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옛시절, 골목길과 담벼락을 회상하며
2012-08-09 11:27:57최종 업데이트 : 2012-08-09 11:27:5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작렬하는 여름 햇빛. 장바구니를 들고 수퍼로 나서던중 골목길로 들어서니 그 땡볓 아래서 뭔가 책을 펼치고 열공(?) 하는 아이가 있다. 헉, 대단한 향학열?
담벼락 바로 옆에는 감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손바닥만한 그늘에 몸을 기대어 펼친 책. 지나가면서 쓱 보니 수학 문제집이다. 모르긴는 해도 학원 숙제를 덜한 아이가 가방을 어깨에 멘채 학원 차가 올때까지 짬을 내어 숙제를 마무리하는 느낌. 후후... 순전히 추측이다.

골목길 담벼락 또 한쪽에서는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는 아이가 보였다. 적잖은 행인들이 그 옆으로 지나치며 흘끔흘끔 쳐다봐도 아이는 꿈쩍도 안한채 문자 삼매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지족 아이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빠져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내 어린시절 골목길과 담벼락이 떠올랐다.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날에도, 햇살이 뜨겁게 비치는 8월에도 담벼락 사이는 꼬마들의 놀이터였다. 자치기, 딱지치기, 팽이돌리기… 지금과는 영 딴판인 풍경이었던 셈이다.
동네 꼬마들은 해거름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나설 때까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특히 여름보다 겨울철에는 구름이 햇살을 가린 날에는 싸리 빗자루를 훔쳐 모닥불을 피우고 코 밑이 검댕으로 물들도록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곤 했다.

 
옛시절, 골목길과 담벼락을 회상하며_1
옛시절, 골목길과 담벼락을 회상하며_1

어디 그뿐인가. 
놀이터로 놀러 가는길, 학교에 가는길, 아버지 막걸리 주전자 들고 터벅터벅 걷던 길, 어딜가든 그 길엔 항상 길거나 짧은 담벼락이 늘어져 있었다. 받아쓰기 100점 맞아 싱글벙글 뜀박질하며 지나오던 길에서도 담벼락은 내 옆에서 함께 기뻐해 주었고,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혼자 쓸쓸히 집으로 가던길에도 담벼락은 함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의 추억은 항상 정물화가 찍힌 흑백사진처럼 골목길 모퉁이에서 생각이 맴돌게 된다. 마음부터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골목길은 시대적 현실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OOO 아부지는 똥 퍼요"라는 우스개 놀림의 대자보부터 "소변금지" 경고문에 "영희는 철수한테 시집간대요"라는 사생활 침해(?) 낙서에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크레용 토막, 석필, 백묵에 항아리 깨진 쪼가리 긁어서라도 무언가 끄적거려 놓는 곳이 담벼락 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무슨 소린지 모를 "반공 방첩"에 "간첩신고 113"도 그때 담벼락을 장식했던 단골 구호였다.
온갖 낙서와 덕지덕지 전단지 붙이던 광고판과는 달리 국민학교에(지금의 초등학교) 갓 들어간 아이들이 새로 배운 가갸거겨를 복습하는 곳도 바로 그 벽이었고 중학교에 들어간 머리 좀 큰 아이들이 알파벳을 연습하는 곳도 바로 그 곳이었다.

대체로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자리 잡고 앞에 조금 넓직한 공터라도 끼고 있는 집의 담벼락은 대개 이런식으로 담벽을 도배 했다.
하지만 요즘 골목길 담벼락은 그때의 졍겨움이라곤 찾아볼수가 없다. 
아이들은 여름이 되어도 담벼락의 그늘에 모이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더 이상 햇볕 따사로운 담벼락 아래 양지를 찾지 않는다. 모두들 학원으로, PC방으로, 오락실로만 몰려 다닌다.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가 유일한 휴식공간이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갈수록 강퍅해진다고 말한다. 그들만이 모이던 독특한 문화공간도 점차 사라지고, 그런게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은 정말 담벼락의 맛을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물내음과 흙내음에 빠져 튀기는 빗물을 맞으며 물장구 치던 어린시절, 이웃집 아이와 비닐을 쓰고 담벼락 굴뚝 옆에 쪼그리고 씩씩거리며 앉아 있던 모습. 옆에 앉은 동무의 들썩이는 어깨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 올랐는데 왠지 갑자기 삶은 감자가 먹고 싶어지던 그런 골목길과 담벼락은 이제 없다. 
이엉을 엮어 우지뱅이 씌운 그 담벼락이 그립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