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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베고 잔디 씨 채취하던 여름 방학이야기
2012-08-09 09:37:22최종 업데이트 : 2012-08-09 09:37:22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말복과 입추를 계기로 찜통 더위가 조금은 달라진 것도 같다. 한낮 더위야 어쩔 수 없지만 새벽녘에 들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이불을 더듬더듬 찾게 된다. 

이럴 때쯤 아이들에게 반갑지 않은 예정 된 손님. 개학을 앞두고 있다. 올해는 주5일 수업으로 방학기간이 일주일에서 열흘까지 짧아져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개학을 맞을 준비해야 한다. 체험학습 보고서를 써야하고 음악회나 공연 관람 후기도 써야 한다. 그보다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미루어 두었던 일기 쓰기다.

예나 지금이나 방학이 학창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30여 년 전 시골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던 나는 요즘처럼 여행이나 문화생활 이런 것들은 꿈에도 할 수 없는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보통 방학숙제는 방학하고 나서 일주일 안에 거의 모두 끝내고 주야장천 놀다가 개학 며칠 전에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 숙제로 마무리 했었다. 

만들기야 성냥 상자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서 저금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만들기 숙제를 잘 해오지 않은 학생들 덕분에 대부분 만들기 상은 빠지지 않고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여름방학 숙제 중에는 퇴비하기와 잔디 씨 채취하기가 있었는데 숙제 같은 의무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끝내기란 매년 하는 것이었지만 할 때마다 만만해지지 않았었다. 

그 시절 여름 시골 농가에서는 잡목들을 잘라서 퇴비를 만들었었다. 그 간벌한 잡목과 풀은 쌓아놓고 겨울 내내 외양간에 깔아주어 푹신한 소들의 이불을 만들어 주었는데 매일 바꿔줘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으로 된 절단기가 없어 순전히 힘과 요령으로 자르는 작두를 이용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무척 위험한 기구였는데 참 무심하게 이용 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잡목이라 하더라도 풀베기는 초등학생이 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다가 낫으로 손도 베고 또 크고 작은 사고도 많았지만 오늘날처럼 세세하게 치료를 받지도 못했고 무심하게 빨간약이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했었던 같다. 
어른들 몰래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아버지께서 부드러운 풀을 베어 풀어지지 않게 꼭꼭 묶어 머리에 이고 갈 때도 머리가 아프지 않게 해 주었었다. 학교에서 그 풀들을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졸업 할 때까지 여름방학 개학하는 날에는 풀을 한 아름 여자아이들은 머리에 이고 남자아이들은 어깨에 메고 등교하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었다.

풀 베고 잔디 씨 채취하던 여름 방학이야기_1
풀 베고 잔디 씨 채취하던 여름 방학이야기_1

풀 베고 잔디 씨 채취하던 여름 방학이야기_2
풀 베고 잔디 씨 채취하던 여름 방학이야기_2

그리고 잔디 씨를 채취하여 편지 봉투에 넣어 개학 날 제출해야 했는데 봉투 반이 넘지 않으면 퇴짜를 맞아서 다시 추가로 잔디 씨를 받아와야했다. 시골이라 잔디 씨 채취 할 곳은 지천에 깔려 있었지만 좁쌀 보다 작은 잔디 씨를 훑어서 편지봉투를 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묘지 주변을 기어 다니면서 한 가닥 한 가닥 훑어내려면 연한 손가락에는 금방 풀물이 들고 붉게 골이 졌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끌벅적 킬킬거리며 손바닥에 갈색의 잔디 씨를 올려놓고 "요요요" 소리를 내면서 불다가 호흡을 반대로 하여 입 속으로 훅 하고 들어가 캑캑 거리기도 했었다. 어찌 보면 반질반질하게 생긴 갈색의 씨앗이 작은 벌레 같게 생긴 모양새가 머릿니와 비슷하기도 하다. 
팔뚝 위에 쭉 줄을 세우고 두 손톱을 맞대어 이 잡은 시늉도 하고 놀았다. 잔디 씨를 받는 숙제에서 이 잡는 놀이로 바뀌고 급기야 넓적한 돌 위에 올려놓고 찧기도 하고 그러다가 소꿉놀이로 아예 전업을 하기도 했었다. 

지난 날 우리들의 여름 방학 과제를 요즘 아이들에게 얘기하면 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냐고 할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숙제야 체력 기르기 일환으로 줄넘기하기. 여행으로 마음 살찌우기 . 참을성 기르기로 텔레비전 3일 동안 안보기 등 듣기만 해도 럭셔리 그 자체다. 

예정에 없이 찾아오는 잡상인처럼 불쑥불쑥 들어오는 서풍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옛 추억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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