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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
8.15 광복절과 건국절의 차이
2012-08-13 10:17:12최종 업데이트 : 2012-08-13 10:17:1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홍범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1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1

조국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일왕 히로히토가 8월 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하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거리로 나왔기 때문이다. 

조국이 해방된 소식을 들은 많은 국민들은 전국에서도 그 풍경은 똑같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감격의 눈물을 보이며 만세를 불렀기 때문이다. 
서대문 형무소에도 그동안 투옥되었던 독립투사들이 거리로 나와 서울시민들과 함께 환호를 외쳤다. 일부 사람들은 서울 남산에 태극기를 게양하는가 하면 전국 방방곳곳에서는 경축 퍼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민족과 조국이 식민시대를 살게 된 것에는 1895년으로 올라간다. 1895년 강화도 사건을 교묘하게 이용한 일본은 사사건건 조선에 간섭을 하게 된다. 15년 후 당시 우리나라는 청일 전쟁, 노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의해 1910년 8월 29일 강제 병합이 되고 만다. 병합된 조국은 35년간 온갖 강제 수탈로 인해 민족 역사상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기본 권리인 인권마저도, 강제 노동과 강제 징병 및 강제 징용에 시달려야 했다. 민족의식과 문화 더 나아가 민족의 씨를 없애기 위해 한글을 쓰지 못하게도 했고 강제로 일본말을 사용하게 했으며, '황국 신민의 서사'라는 것도 외우게 했다.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2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2
 
그러나 35년간의 수탈과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가의 활동은 계속됐다. 해외에서는 임시정부를 수립하는가 하면 광복군 등을 조직해 끊임없이 저항하게 된다.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윤효정, 이육사, 손병희, 김창숙, 김산, 주세죽, 김규식, 계훈제, 곽낙원, 이상제등이 있었고 수원지역 또한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세환,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 김향화, 이정근, 백낙렬, 김홍렬, 홍면옥 등이 있다. 

이러한 독립 운동가들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광복절의 의미는 퇴색됐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광복 활동에도 불구하고 국내엔 일제와 야합해 그들의 침략과 약탈 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하여 추종한 세력도 적지 않았다. 

종일을 주도했던 주요 인물로는 을사오적의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정미칠적의 고영희, 송병준, 이병무, 이완용, 임선준, 조중웅, 경술국치의 고영희, 민병석, 박제순, 윤덕영, 이병무, 이완용, 이재면, 조민희, 조중응 등은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로 친일파로 규정했다.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3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_3
 
광복절은 이러한 독립운동의 역사, 일제의 맞서 독립을 위해 싸워온 이야기도 함께 하는가 하면 일제에 붙어 그 세력에 옹호한 추종세력의 역사도 함께 한다. 
우리가 만약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억을 한다면 일제에 맞서 싸워온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와 해방을 열망한 국민들의 35년간의 의지를 지우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하지 않고 광복절이라 기억을 해야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황당한 글을 읽은 적 있다. 윤봉길 의사가 던진 도시락 폭탄을 어떤 사람은 테러라고 말했던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왜 도시락 폭탄을 던졌는지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당시 폭탄을 터트린 상황만 보고 테러라고 말한 것이다. 

광복절과 건국절 또한 이러한 차이와 같다. 과거의 과정이 없다면 그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67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광복절의 의미와 35년간의 항쟁의 역사도 같이 알아보는 것도 광복절을 이해하는데 좋을 듯싶다.

광복절, 수원시, 수원,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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