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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
2013-07-03 17:50:44최종 업데이트 : 2013-07-03 17:50:44 작성자 : 시민기자   유시홍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_1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_1
지난 5월 25일은,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며,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이며, 앵두와 딸기의 달이요, 모란의 달이다'라고 썼던,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세상과 인연을 접은, 수필가 피천득(1910. 4. 21. ~ 207. 5. 25)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 만 6년이 되는 날이었다.

책장을 정리하던 중 격월간지인'수필과 비평(제90호)을우연히 넘기다가 피천득선생을 추모하는 기획특집에서 선생의 대표작이라 불리어지는'인연'이라는 수필을 접하였다.
이 수필은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속에서도 많이 언급이 된 워낙 유명한 수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많이 알고 있으나 실제로 글을 읽은 독자는 많지 않다고 한다. 

수필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수십 년 전 작가가 열일 곱 되던 봄,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그곳에서 지인의 소개로 미우라라는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면서, 그 집에서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를 만난다. 소녀는 작가를 오빠같이 따랐다. 작가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작가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추고, 자기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손에 끼어 있던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사코의 엄마는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작가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며 헤어진다.


작가가 두번째 동경에 가서 아사코를 다시 만난 것은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난 사월 어느날이었다. 그 동안 작가는 초등학교 일학년 또래의 예쁜 여자 아이들을 보면 아사코를 생각하였었다. 숙소를 정하자마자 작가는 바로 미우라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그의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문과 삼학년의 숙녀가 되어 있었다. 작가는 약간 서먹서먹 하였으나 아사코는 작가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는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54년 미국에 가던 길에 작가는 미우라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미우라선생네는 그때까지 그 집에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따로 나가서 산다는 아사코를만나고 싶다는 작가를 아사코어머니는, 이십 여 년 전 작가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었던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으로 안내하여 주었다. 

작가는 아사코의 집을 보는 순간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하던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하면서그 집에 들어선다. 그때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작가는 절을 몇 번씩이나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지고 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수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_2
차라리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인연_2

기자는 얼마 전 친구의 아들 결혼식장에서 초등학교시절의 여자 동창생 여러 명을 만났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중 얼굴을 못 알아 보는 친구들이 대다수 였으며 그나마 알아본 친구들의 모습은 어릴 적 소녀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편적인 중년 여성들의 모습으로 변하여 있었다.

수필의 마지막 구절의 '아니 만났어야 좋았다'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오래 전의 첫사랑이나 은사들을 찾아 주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 곳에서 어릴 적 초등학교시절의 첫사랑을 찾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방송인들이 첫사랑을 찾아 놓고는 실망하는듯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인연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깊이 묻어 둠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던 기억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보고는 다시는 못 만나는 인연이 있고, 정작 만나고서는 상대의 변한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과거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마음 한 구석에 가만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보단 잊지 못해 그리워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가도 당시 아사코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안타까웠던 느낌을 수필로 남겨 그때 당시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얼마 전 휴대폰을 바꾸면서 전화번호를 저장하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끈긴 여러명의 지인들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한명 한명씩 얼굴을 떠올려가며 그들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그 사람들 중에는 사소한 의견차이로 부터 시작하여 하물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소식이 끊긴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
생을 살아오면서 오랜 기간 인연을 쌓아온 많은 사람들인데 혹시나 진정으로 좋은 인연을 이렇게 놓치는 것을 아닐까 하며 안타까운 생각을 하였었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비롯한 몇 편의 수필을 읽고 나서는 책도 적당한 시기에 접하는 인연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기자의 마음속에는 이 수필이 그리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저자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내 마음속에는 깊이 간직하였던 인연이 없었기에 그리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는, 내 일생에 딱 한명의 영원한 인연 그녀가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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