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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 펜팔연애의 추억
2012-08-10 16:19:52최종 업데이트 : 2012-08-10 16:19:52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호
등기 우편물을 보낼 일이 있어서 우체국에 잠깐 들렀는데 연필로 예쁘게 쓴 편지봉투를 등기로 보내는 어린 학생이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우체국에 나타난 초등학교 4-5학년쯤 돼 보이는 어린 소년. 엄마는 아이에게 우체국 업무도 알려주고 싶었던것 같고, 아이에게 손 글씨 편지를 쓰게 했던 것 같다. 추측하건데, 아이는 방학기간 동안 컴퓨터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가 아닌 직접 쓴 손글씨 편지를 담임선생님께 보내는 듯 했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 아이 엄마의 가르침 또한 존경스러웠다.
아이는 편지 안에 뭐라 썼을까. 방학기간 동안 시골의 외갓집에 가서 물장구 치고 수박 참와 따먹으며 놀았던 재미난 일,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글, 빨리 개학 해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썼겠지.... 

아이가 담임선생님께 썼을 편지 내용을 혼자 상상하면서 나의 옛 시절 펜팔에 얽힌 추억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두두둑 하면 편지든 메세지든 휘딱 날아가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젊었던 그때는 안 그랬다.
그땐 펜팔이라는게 대유행이었다. 썬데이 서울 같은 잡지에 주소와 이름을 적어 보내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밀물처럼 밀려 오는 연서들...  

'양다리' 펜팔연애의 추억_1
'양다리' 펜팔연애의 추억_1

지금 나이 40대 중후반 이상이면 그때 유행했던 펜팔이라는 걸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요즘 아이들로 치면 PC게임에 미치듯, 그때 펜팔에 미쳐서(?) 문방구에 가서 꽃이나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는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사다가 정성껏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렸다. 
그 많은 펜팔 연애편지를 주고 받던 중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렇게 두사람이 인연을 맺게 돼 결혼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흔히 쓰는 말로 '뭔가 되려니까' 그런 일이 생긴듯 했다.

나도 펜팔을 통해 풋사랑을 해 보았다.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인데 참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고등학생이던 그때, 한 여고생 A의 편지에 꽂혀 꼬박꼬박 답장을 하며 사랑을 키우던 중, 하루 수십통씩 오는 편지를 받고 주체하지 못하다가 아내의 편지글에 맞먹는 제3의 여고생의 멋진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동안 펜팔 양다리(?)를 걸치게 됐다. A에게도 답장을 쓰고, 제3의 여고생인 B에게도 답장을 쓰며 '이중생활'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한달쯤 됐을까? 그만 큰 실수를 했다. 
A와 B에게 각각 편지를 썼는데 실수로 그만 A의 봉투에 B에게 쓴 편지를 넣고, B의 봉투엔 A에게 쓴 편지를 넣어 부치고 만 것이다. 그동안 죽 해오던 서로의 이야기가 있은터에 내용을 읽어 보면 전혀 쌩뚱맞은 이름이며 내용이 들어있으니 그걸 받을 사람 표정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은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난 뒤에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두 개의 편지를 각각 다른 우체통에 넣은 것이다.

아...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영낙없이 두사람 모두에게 절교를 당할 처지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쩌지... 어쩌지.... 누구 편지를 포기할 것인가...
난 B를 잡기로 결심하고, 부랴부랴 B에게 보낼 편지를 넣은 우체통에 가서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수거하러 올때까지 무려 4시간을 앉아서 기다렸다. A에게 잘못 보낸건 포기한채. 

그리고 4시간만에 드디어 우체부 아저씨가 나타나셨을때 사정 이야기를 하며 편지를 돌려 달라고 하자 그 아저씨는 '별 미친눔 다 보겠네'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되돌려 주셨다. 
요즘 같으면 아마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내가 A여인에게 쓴 편지가 B에게 읽힐뻔한 황당한 사건은 막을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것처럼 황당한 편지를 받은 A로부터는 편지가 당장 끊겨 버렸다. 업보(?)였다.

첨단 디지털 시대인 지금 생각하면 구식 아날로그 우체통 덕분에 가능했던 에피소드였다.  만약 요즘처럼 엄지로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그렇게 실수로 보냈거나, 이메일로 편지를 써서 그렇게 날렸다면 다신 회수하지 못한채 나의 양다리 걸치기가 단박에 들통나 아마도 난 뺨따구 한 대 맞고 절교를 당했을 거다. 
정말 추억이 가득한 펜팔 편지. 지금도 고향에 갈때마다 그 우체통이 있는 곳을 지나치며 혼자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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