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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나는 제도'가 사라진다
입신양명의 길이었던 고시
2012-08-11 11:21:14최종 업데이트 : 2012-08-11 11:21:14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양
신문을 읽다 보니 이제 2-3년 안에 모든 고시제도가 폐지 된다고 한다. 고시란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3개가 있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때 누가 옆에서 "너는 장래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무작정 "대통령요" "판사요" "검사요" "외교관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은 그냥 무조건 좋은 것, 판사와 검사, 외교관은 뭐하는건지 잘 몰라도 하옇튼 최고의 자리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식이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부모로부터, 집안을 일으키는 최고 경지는 판검사나 외교관같은거라는 생각을 가진 부모로부터 무조건 주입식으로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많은 고시생들이 대학에서는 물론이고, 대학을 떠나서는 집을 나와 절간이나 고시원으로 들어가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어릴때는 무작정 판검사가 되겠다던 필자는 성장하면서 능력이 안돼 고시쪽에는 관심도 안뒀지만 가까운 친척인 4촌형님을 비롯해서 친구, 선후배 등 적잖은 지인들이 이 사법고시에 도전하느라 고시생이 되었다.
그 덕분에 대학 동창 하나는 고시생활 4년만에 사법시험에 패스해 현재 변호사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제도'가 사라진다_1
'개천에서 용이 나는 제도'가 사라진다_1

서울의 신림동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시촌이다. 물론 전국에 큰 도시에는 고시생들이 몰려 있는 고시촌이 형성돼 있었다. 
우리 가족중에 고시생의 길을 걸은 사촌형님이 계셨다.
어린시절 큰집에 놀러갈 때면 조용조용 발 뒷꿈치를 들고 다녀야만 했고 다른 사촌형님이나 동생들과 말을 할때도 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하는게 버릇이 될 정도였다.

그 이유는 고시공부를 하는 사촌형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것도 모른채 형님이 고시에 입문한 뒤 처음 큰집에 가서 대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른들께 인사를 잘한답시고 큰소리로 "큰엄마! 저 왔~" 했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미닫이 문도 조용히 열고 닫았고 제삿날에도 사촌형님은 꼼짝을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제사가 막 시작될 때야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명절날에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꽉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오가느라 시간 뺏기고 몸이 피곤하면 공부한거 다 까먹는다며 특별 배려로 명절날 열외를 시켜준 때문이었다.
형님을 특급 대우하는 큰댁에서는 그 정도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서 처음 큰댁을 방문하는 사람은 형님이 마치 그 댁의 가장 큰 어른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고시 준비 끝에 시험에 패스하기만 한다면야 정말 당장 돼지 잡고 소 잡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온 동네에 "축, OOO의 장남 사법고시 패스"라며 플랭카드 붙이고 잔치를 뻑적지근하게 벌렸다. 모교에도 "본교 OO회 졸업생 OOO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푸랑카드를 교문 앞에 자랑스럽게 걸고 한달씩 놔뒀다.
반대로 몇 년간 준비하고 공부를 해도 결국에는 시험에서 붙지 못하면 그동안의 세월이 허공에 날라가 방황하거나 심지어 폐인이 되는 경우도 적잖았다.

사촌형님 역시 나이가 30대 중반이 넘도록 실패를 거듭하다가 지금은 조그만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 고시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었던' 제도이기는 했다. 요즘은 이런 시험조차도 돈 많고, 경제적 여유가 풍부한 사람들이 물량공세로 나오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다지만 그래도 그나마 개천에서 용을 배출한 제도였음은 분명했다.

지금도 유명 정치인중에 행시, 사시, 외무고시까지 3관왕을 한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한데 이것은 정말 공부의 신이 아닐까.
이제 곧 이 고시제도가 수년 안에 없어진다고 하니 우리의 고시문화도 그때쯤에 완전 사라질것이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도 볼수 없을듯 하니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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