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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버지의 냄새가 그리워
2012-08-11 11:59:44최종 업데이트 : 2012-08-11 11:59:44 작성자 : 시민기자   남민배

"나 이제... 고아가 되었다"
"...좋은 곳으로 떠나셨을거야. 너 효자였잖아"
오래전에 어머님을 여의고, 그 몇해 후 아버님마저 멀리 떠나 보내 드렸던 친구가 장례를 마친후 전화를 걸어 내게 한 첫마디. "고아가 되었다"는 말.
나는 "너는 효자였잖아"라며 위로 했지만 그 슬픔을 짐작은 할수 있었다.

친구는 누구보다 효자였다. 어머님이 먼저 가신 후 아버님을 모시고 8년을 살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어찌 못해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을때 친구는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슬픔에 고아가 되었다 했다.
시민기자도 아버님이 오래전 세상을 뜨시고 지금은 어머님만 고향에 홀로 계시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고아가 아니니 신께 감사드릴 뿐이다.

"요즘은 눈물도 안 나와. 아버지가 얼마나 서운하실까"
아버님이 떠나신후 두해정도 지났을때 내가 친구에게 한 말. 처음 한동안은 생각만 해도 당신이 떠올라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당신을 떠올리며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몹쓸 아들놈...
그렇지만, 그런데도 아직도 아버지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일까. 이젠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마치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익숙해졌는데도 그래도 눈물은 안나와도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이고, 누가 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코끝이 먼저 시리다. 

지금도 고향엘 가면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 우선 당신이 잠들어 계신 산소로 달려간다. 평소 당신이 즐겨 드시던 막걸리를 싸 들고. 거기에 가면 아버지 냄새가 날 것만 같아서...
이 뜨거운 여름날에도 왼종일 땡볕의 논밭에서 농삿일을 하다가 싸립문 열고 들어오시며 "막걸리 한잔 퍼와라"하시던 어릴적 당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흙 팩으로 검게 그을린 주름살 대충 메우고 싱거운 웃음으로 컬컬한 막걸리 가슴속에 한 사발 들이붓고는 우렁각시 차려놓은 들녘을 보는 듯, 이따금 고된 농삿일의 피로를 막걸리 한사발에 담아 쭈욱 들이켜신 뒤 "캬아~" 하시며 묵은 김치 하나로 입가심 하시던 그 모습. 아버지, 당신은 참 정정하셨다. 

아직도 아버지의 냄새가 그리워_1
아직도 아버지의 냄새가 그리워_1

그저 항상 하회탈처럼 웃으시던 인자한 모습. 돌아가시기전 이마엔 세월의 잔주름이 밭이랑처럼 깊었다. 부질없는 속상함과 함께. 
거북등처럼 갈라진 까칠한 손마디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자식 놈 하나 잘되라고 평생을 사신 당신이 잊혀지지 않는데... 아버지를 보내드리던 그해,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과  죄책감. 빙하기보다도 춥고 서러웠다. 너무나 외롭고 가슴이 아렸다.

이제 홀로 남아 고향집을 지키시는 어머니. 항상 눈물이 난다.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다. 들녘 한 가운데 서 흙을 파시던 아버지 모습이 항상 굽은 허리로 아들을 맞이하시는 어머니 등 뒤에서 아프게 아른거린다. 
고향 집에는 당신이 쓰시던 영농일기가 있다. 아버지 손길이 닿아 반들반들해지다 못해 검은 손때까지 묻어 너덜거린 표지. 다른건 다 태웠어도 그거만은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 손때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그것을 열면 낯익은 당신의 글씨가 사군자의 한 폭처럼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볼펜 한 자루...
이제 아버지가 떠나고 흔적만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데 어느 날인가 아들 아이와 밥을 먹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음식을 씹을 때 나는 쩝쩝 소리가 어찌나 아버지와 똑같은 지.
소리만 들으면 영락없는 아버지 진지 드시는 소리였다. 

그동안 아들아이와 수없이 같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왜 이제야 그 소리를 들었을까. 밥상 앞의 아들아이를 보며 당신을 본다. 아버지는 아들아이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남아 있었나 보다.
다시  산소에 앉아 속절없는 넋두리를 당신께 쏟아낸다.
"뭐가 그렇게 급하셔서 황망히 떠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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