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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제부터는 재래시장도 가자
나는 그래도 가끔 쓸모있는 '머슴'
2012-08-11 13:46:25최종 업데이트 : 2012-08-11 13:46:25 작성자 : 시민기자   장영환
요즘 여성 상위시대니, 양성 평등이니 하여 솔직히 집안의 남편들은 사실상 '하숙생'이나 진배 없다.
집을 구해도, 가구를 들여도, 아이들 교육상 어떤 결정을 해도, 시댁이나 처가에 돈 쓸일이 있어도 거의 전적으로 부인의 처분에게 맡긴다.
이유? 간단하다. 아내의 결정이 경천동지할 일이 아닌 이상 그냥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게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정에 토를 달아 봤자 승산(?)도 없고, 설사 운 좋게 내 뜻이 관철된다 한들 그건 두고두고 상처뿐인 영광이 될 공산이 무척 크니까. 이건 오랫동안 쌓아 온 내공에서 터득한 진리이니 남편들께서 명심 하시길....

하여튼 아내의 결정과 행동에 "옳소"하며 따르다 보니 남편들은 정말 하숙생이 되었는데, 주말에는 아내의 몸종이나 머슴이 되기도 한다.
나는 대표적으로 아내가 시장을 볼때 짐꾼이 된다.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가서 장보기를 할 때면, 내가 하는 몫은 카트를 밀며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이다. 이것저것 아내가 사는 물건들을 카트에 넣을 때마다 나는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벼운 것은 위로 놓으면서 차곡차곡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건들을 고를 때마다 아내의 행동이 굼뜨기가 여간 아니다.

이것 들어서 제조일자를 찾고, 저것 잡아서 유효기간을 살피고, 날짜가 같으면 이것 들어보고, 저것 흔들어 보고, 둘을 두 손 위에 얹어 찬찬히 비교해보고...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가면 2~3일도 안 돼 다 먹어 치울 걸 가지고 왜 그리 꼼꼼하게 시간을 끄는지 부아가 치밀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거기서 화를 내면 집안 분위기 살벌해 지니 역시 머슴은 그냥 꾹꾹 참아주며 아내의 꽁무니를 졸졸 따를 뿐이다.
매번 장을 볼 때마다 아내의 이러한 습성을 아는지라, 나도 슬슬 나대로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다. 즉 즐겁게 장보기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고 이름들을 외우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지금까지 무심하게 지나쳤던 진열대를 새로운 눈으로 살피고 더듬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산뜻하고 보기 좋게 포장을 해서 그런지 모든 게 먹음직스럽고 사고 싶게 진열돼 있다. 정말 치밀하게 구매자의 상황과 심리를 노려 견물생심이란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내의 쇼핑에 동조자가 되다 보니 문득문득 재래시정의 할머니들이 생각 난다. 재래시장에는 제법 큰 점포를 갖은 상인들도 있지만 시장 길바닥에 앉아 왼종일 땡볓과 싸우며 장사를 하는 할머니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편리한 것도 좋기는 하지만 편리함만을 찾다보면 우리의 투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시장은 어쩌냔 말이다. 

여보 이제부터는 재래시장도 가자_1
여보 이제부터는 재래시장도 가자_1

정말이지 주부들이 이런 대형 매장에만 드나들다 보면 재래시장의 물건이나 노점에서 궤짝 위에 올려놓고 파는 할머니들의 푸성귀들이 눈에 찰 리가 없을것 같다.
그래서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들이 점차 약화되고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동네 구멍가게의 유리병 속의 눈깔사탕을 사먹던 그 시절은 점점 동화 속의 전설로 사라지면 어쩌나.

용기를 내었다. "여보, 우리 재래시장도 가자"고.
아내는 내 말뜻을 금새 알아차린다. 그리고 나이롱 '몸빼'를 입은 할머니가 있는 재래시장을 더 많이 다니기로 했다.
이럴때는 하숙생도 가끔 쓸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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