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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참아가며 생업 현장을 지키는 노점상들
2012-08-07 10:19:41최종 업데이트 : 2012-08-07 10:19:4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남
회사에서 나선후 10분만 걸으면 길가에서 좌판을 깔고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 죽 늘어서 있는게 보인다.
보통의 비좁은 가게들이 그렇듯, 이 노점상 역시 비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인도를 건너 차도 편에 진열대를 꾸미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에 좋게 과일을 진열해 놨다. 여름 과일인 복숭아, 참외, 토마토...

아파트 상가 중 번듯한 점포를 구하지 못한 과일가게 주인이 이렇듯, 인도에까지 나와서 노점을 펼친 것은 웃자는 말로 한가지 표현하자면 아마 도로교통법 위반이 아닐까 싶다. 
개인 소유의 땅도 아닌 인도라는 공공 땅에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이렇게 법과 규칙이라는 잣대로 들이밀어 자르다 보면 숨막혀서 못 살것이다. 노점상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항상 준법과 위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니까. 
우리는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것은 미담일 뿐이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위법의 여지는 천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다닐때 읽은 책의 내용을 떠올려 본다. 국문학 강독 교양과목에 실학자 박제가의 일이 나오는데 당시 육의전의 가게들을 가가(暇家)라고 불렀다고 한다. 거리 한가운데 가게가 섰다가 왕이 지나가게 되면 그것을 말끔히 치웠다가, 왕이 지나간 뒤 다시 가게를 세운다는 임시건물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때도 노점상을 이렇게 나랏님이 오가실때는 적당히 치웠다가, 다시 생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배려한 모양이다. 먹고 사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수 있다.
"아줌마, 저 복숭아 얼마예요?"
"그거, 5개 5000원. 맛이 좋아. 무지 달어. 싸 주까?"

 
더위 참아가며 생업 현장을 지키는 노점상들_1
더위 참아가며 생업 현장을 지키는 노점상들_1

어제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옆에서 미시처럼 예쁘게 차려 입은 젊은 주부가 포도와 복숭아를 파는 노점에 다가가 가격을 흥정한다. 좌판에 펼쳐진 복숭아 더미를 가르키며 가격을 물은 이 주부는 한 개만 더 얹어 달라고 한다. 
노점상 할머니는 정색을 하신다. 그럼 남는게 없다며. 내가 보아도 5천원에 100개 주는 어떤 과일이 있다면 그중에 한두개 더 얹어 줘도 별 무리가 없을듯 하지만, 5천원에 겨우 5개인(1개당 1000원) 복숭아를 하나 더 얹어 달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이 주부는 센스가 있었다.
"호호호. 할머니 한번 웃어보시라고 한 말이예요. 복숭아에서 아주 단내가 나네요. 5개 싸주세요. 여기 돈 받으시고요"
그제사 안도의 숨을 내쉬는 할머니. 얼굴에 기쁜 마음이 역력하시다. 좌판을 보니 퇴근 무렵인데도 많이 팔지는 못하신듯 하다.

농담 한마디 쓱 던져 더위에 지친 70대 노점상 할머니에게 가벼운 웃음을 주며 복숭아를 사 들고 총총히 사라진 젊은 주부, 뒷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 주부가 노점에서 과일을 사는 모습을 보며 몇 년전 TV에서 보았던 장면 하나가 오버랩 되었다.

2008년쯤으로 기억한다.  MBC연기대상에서 탤런트 박철민씨는 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화점에서는 10원도 안 깎으면서, 노점상에서는 푼돈까지 깎으려 한다며 다그친 고마운 아내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모두가 서민들인 가난한 노점 판매상들에게서는 값을 깎으려 하고, 부유한 백화점에서는 하나도 깎으려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소비행태를 아내가 꼬집은 것인데 그것을 솔직하게 밝히며 반성하고 아내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어서 고맙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노점의 물건값을 깎는 사람은 웬지 야박해 보인다. 박철민씨의 발언의 의도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백화점에서는 정찰제이기 때문에 깎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노점상에서는 정찰제가 아니라서 가격을 속인다는 말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리고 깎아 달라거나 뭔가 덤으로 더 달라는 것은 그분들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노점상도 마음이 편하고, 노점상에서 물건을 사는 서민들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값을 속이는게 아니라 노점상이라는 특수한 인정, 노점상에서만 느낄수 있는 사람 사는 향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수원시내 길거리에서 오늘도 36도를 넘어서는 한낮에 더위와 맞서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노점상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돈 좀 왕창 멀어 골목길에 손바닥만한 가게라도 하나 낼수 있는 날이 빨리 오가를 바래 본다.
나도 내일은 퇴근길에 동네 노점에서 포도나 좀 사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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