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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으면 과연 내 아이들은 어떻게...
2012-08-07 15:18:34최종 업데이트 : 2012-08-07 15:18:34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호
요즘 한국선수들 런던에서 선전하는 올림픽 덕분에 하루하루 열띤 응원을 하느라 밤잠도 설친다. 올림픽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종목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배드민턴도 꽤 재미 있다. 중학생 아이가 유난히 배드민턴을 좋아해 최근에 라켓을 사 달라더니 저녁밥만 먹고 나면 날더러 배드민턴을 치자며 손을 잡아 끈다.

이 뜨거운 여름날, 아침부터 왼종일 달궈진 콘크리트바닥에 나가서 배드민턴을 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어쩌나. 
어제 저녁에도 밥 먹기를 마치자마자 아이는 더워서 움직이기 싫다는 내 손을 억지로 끌고 현관문을 나선다. 더위에 무슨 배드민턴이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 고집을 꺾지 못해 따라 나섰다. 

연일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없어도 여름나기 좋았던 우리 집 거실도 뒷전으로 밀려나 아파트 1층 현관문 앞 통로가 명당자리가 되었다. 그렇게 넓진 않지만 항상 그늘이 지는데다 사람들이 항상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골 저녁 운치가 제법 나는 곳이다. 무엇보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에도 이곳은 바람 식을 줄을 몰라 아파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늙으면 과연 내 아이들은 어떻게..._1
내가 늙으면 과연 내 아이들은 어떻게..._1

"어디서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까? 에어컨이 다 뭐야. 자연 바람이 최고지. 더군다나 얼마든지 써도 돈 내라는 사람도 없고."
벌써 내려와 자리를 잡으신 할머니 두분의 말씀이 딱 맞다. 명당은 명당이다.
아이와 함께 1층 현관 바로 옆에 마련된 배드민턴 코트에서 30분 조금 넘게 땀을 뺐다. 왼종일 햇볓에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감당키 어려워 그 정도에서 운동을 마친 후 아이를 올려 보내고 난 뒤 나도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평상에 걸터 앉았다.

앞뒤로 툭 터진 것이 대청마루와 다를 바 없는 이곳에 이미 할머니 두분이 앉아 계셨고, 잠시후 두분이 더 오셨다. 각 라인에서 내려오셔서 모두 4분이 된 할머니들은 미리 약속이 돼 있었던지 고구마 줄거리를 벗기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들 계셨다.

"방학이랍시고 쉬는 걸 못 봤어. 중학교 다니는 우리 손자는 공부를 잘하는데도 아침 밥 한 숟갈 뜨고 나가면 하루 종일 학원을 왔다 갔다 안쓰러워 죽겠어. 점심이나 제대로 먹고 하는지…."
"우리 큰손주가 첫 월급을 탔어. 공장 댕기기 힘들 텐데. 그 녀석이 자존심이 좀 세야지. 작업복에 기름칠 범벅이지만 불평 않고 일하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세상 살기가 옛날하고 너무 달라. 힘들어. 애덜은 취직이 안되서 난리라고 하는데 공장이믄 어때.  우리는 학교 문턱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잖어. 그런데 요세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 구하기 힘들다데...."

자식자랑에 취직 걱정에 이어 세상만사 예전과 같지 않다며 한숨 또한 깊었다. 평상에 손님처럼 앉아 자신들의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까지 며칠 전이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레파토리를 들었지만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건강하게 살아서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말은 마음을 짠하게 했다. 

"그 할망구는 어떻게 사나 몰라. 에그... 오랫동안 힘들게 살더니... 그것도 복이지 뭐"
금년 봄, 아파트 1층 화단에서 장미 넝쿨을 손질하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얼마 전 보호시설로 가셨다는 대화 내용. 그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이다.
말수가 유난히 적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할머니들 사이에서 대화 때마다 늘 상대방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시고, 날마다 출근할 때 아침 일찍부터 그 평상에 나와 앉아 계시면서 출근하는 젊은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시던 할머니였는데 올해 초 갑자기 치매 증세가 급속히 악화돼 자식들이 보호시설로 옮겨 드렸다는 것이다. 

노령 인구가 날로 늘고, 자식들과의 관계가 안좋은 분들은 외롭게 살다가 쓸쓸히 여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며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방송에서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가까이 사시던 노인이 치매로 세상과 격리 되셨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좀 더 살갑게 인사라도 자주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면서 언젠가 EBS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치매를 부탁해'라는 방송을 본 여운이 떠올랐하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으로 치매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치매로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동안 운영하던 가게 문도 닫고 넉달째 모든 가족이 전국 곳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만 컸었다.

오른 손에 쥐고 있던 배드민턴 라켓이 유난히 무거운 느낌이 든다. 내가 늙으면, 혹시 치매에 걸리면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대할까. 지금 내가 제녀석들과 배드민턴을 함께 쳐 주며 놀아주던 것처럼, 내가 외롭지 않게 함께 다가와 자식된 도리를 다 하며 살갑게 대해줄까?
글쎄. 글쎄다. 그런 것조차 바랄수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걸 알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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