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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를 돈으로? 부모가?
2012-08-10 12:21:35최종 업데이트 : 2012-08-10 12:21:35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아빠, 숙제 하나만 해줘"
개학을 앞둔 아이가 내게 불쑥 내민건 제녀석이 읽고 독후감을 써 놓았어야 할 책 이름이었다. 실컷 놀고 나서 날더러 써 달랜다.
"아빠 바빠서 안돼 임마. 그걸 네가 해야지 왜 부모가 해주냐?"
"치~이... 다른 애들은 아빠 엄마가 다 해주던데. 바쁘면 인터넷에 다 나오잖아요!. 돈 주면 다 써주기도 한다던데...."

헉. 이놈 봐라. 방학동안 실컷 놀아 제낀건 나무라지 않고 싶다. 하지만, 인터넷에 나온다? 그럼 결국 그거 베끼겠다는거고, 그건 표절 아닌가? 지식 도둑질 말이다. 기가 막혔다.
더 놀라운건 돈 주면 다 써 준다고? 그게 말로만 듣던 숙제 대행 써비스라는건데 이놈이 친구들 만나 놀면서 그런것만 주워듣고 다녔나?

방학숙제를 돈으로? 부모가?_1
방학숙제를 돈으로? 부모가?_1

화가 불쑥 솟아 올랐다. 내가 아이를 잘못 가르킨것 같아서다.
표절, 이거 정말 과거 신정아씨의 학력위조를 비롯해서 최근에 국회의원들의 논문 표절 사건으로 온 나라가 벌집 들쑤셔 놓은듯 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것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게 아니라 매일 신문방송에 나온 이야기들인데 나는 주제넘게 전문적 식견도 없는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어른들의 무감각한 표절 관행 때문에 우리 어린 아이들까지 물이 드는것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곧 개학이 임박한데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예나 지금이나 방학 기간 내내 실컷 놀고 개학날 즈음 벼락치기로 과제물을 챙기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방학 때면 냇가에서 미꾸라지 잡으며 종이배도 띄우고 물장구도 치고, 뒷동산에 올라 잔디밭 위에서 비닐로 된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잔디썰매도 타면서 놀았다. 
외갓집은 단골 방문 장소였다. 그때면 외삼촌은 의례히 텃밭의 토마토를 따서 주셨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방학은 어느새 숨어버리고 꼬랑지만 남게 되는데...

앗차차차...그제야 우리는 방학숙제가 밀렸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뒤늦게나마 숙제가 밀린것에 대한 조급함에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들로 산으로 곤충채집, 식물채집을 나섰고, 오랜만에 앉은 책상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옆에서 바라만 보고 계시던 부모님은 "한심한 눔"이라시며 쯧쯔쯧 혀를 차셨지만 어쨌거나 뒤늦게라도 제 할 일을 하려고 왔다 갔다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뛰어 다니는 아들을 보고선 빙긋이 웃으시며 언제나 스스로 내가 다하기를 기다리셨다. 
물론 갑자기 하려니 잘 되지 않고 짜증이 났지만, 어찌하는 도리가 없었다. 개학 사나흘전부터 밤낮을 꼬박 준비해서 겨우 과제물을 해서 등교했다. 더러는 한두 가지 못 하고 다음 날 제출하기도 했다. 

선생님도 제자들이 방학때 실컷 놀아주었으면 좋겠건만, 학교나 상급기관에서 방학숙제를 내라고 하니 안내줄수도 없어서 숙제를 낸거고, 결국 아이들이 뛰놀다가 못한거 뻔히 알고 있으므로 개학후까지 시간을 더 주신거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방학이 끝나가도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애당초 과제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부모의 몫이었으니까. 아이들은 과제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어디까지나 부모님이 할 일이라 여긴다. 일상에 바쁜 부모는 자녀들의 과제물을 본인이 하도록 지도하지 않고, 학원 공부나 하라 한다. 

반면 아이의 과제물은 인터넷에서 도둑질을 한다. 그게 아니면 대행업체에 맡긴다. 독후감 한 편에 3만원... 이것도 이 시대에만 볼 수 있는 해괴한 풍속도가 분명하다. 
우리는 뭔가 근본도 상실하고, 목적 추구에 미쳐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자녀가 과제물을 하면서 익히고, 터득하고, 인내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어른 된 자세요, 부모 된 도리일 것이다. 남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만이라는 제일주의가 우리의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공책 속에 눌린 방동사니 풀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다듬잇돌을 옮기던 추억이 그립다. 두툼한 식물채집 공책을 들고 교실을 들어서며 환하게 웃었던 개학날의 내 모습이 선하다. 부모님은 나를 언제나 느긋하게 기다리고 지켜봐 주셨다. 매사에 내 스스로 해결하도록 능력을 키워 주셨다.

결국 며칠전, 아이의 밀린 숙제 목록을 가져오라 하고 남은 날짜에 맞춰 계획을 짜도록 일렀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함께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숙제를 해주겠다는게 아니라 방향을 일러주고 체크하고,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어머니의 조바심이 이제는 느긋하게 횡단보도를 걷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엘리베이터 단추만 누르면 집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만 가르치지 말고, 층계를 하나하나 올라가는 길도 있음을 가르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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