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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전시회 수준낮고 볼거리도 없다구요?
싼게 비지떡인데 공짜는 오죽하겠냐는 편견을 뒤엎을 무료전시회 소식
2012-08-10 12:52:30최종 업데이트 : 2012-08-10 12:52:3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불황 속 문화생활 지출비에 지갑이 굳게 닫혀 있다. 조금 이름 있다 싶은 뮤지컬 티켓의 가격은 7~8만원대가 보통이다.VIP석은 커녕 배우의 얼굴이 보일까 말까 한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의 가격이다.  그림 몇 점 걸어놓고 1~2만원의 관람료를 받는 전시회를 사치라고 여기는 데에 충분히 납득이 간다.  

문화 생활과 멀어지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 감성을 메마르게하는 지나친 경쟁 구조 그리고 국민의 문화 생활을 등한시 하는 정부의 무관심등 다양한 요소가 산재하고 있다.  블로그나 SNS가 발달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럴 듯한 자신의 모습을 전시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상에 의해 공연 관람이나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하지만 엄두조차 못내는 서민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감히 짐작해본다.

하루 하루 생활비로 인해 골치 아픈 엄마들에게, 등록금을 버느라 뛰는 알바만도 서너개인 학생들 그리고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이 없는 어르신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정부 산하에 있는 문화 예술 기관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반에서 불황속 서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같은 경우 당일 현장에서 티켓을'반값'에 판매한다거나 '천원의 행복'타이틀에 단 돈 천원으로 고품질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면 무료 전시회를 추천한다.  '무료'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다가도 '싼 게 비지떡이랬는데 무료는 오죽하겠어'하며 가재미 눈을 뜨고 '질(質)'에 대해 의심을 한다. 

무료 전시회 수준낮고 볼거리도 없다구요?  _1
장안구민회관에서 열린 '아시아 코스코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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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전시회 수준낮고 볼거리도 없다구요?  _2
한중일 작가의 작품

무료 전시회는 수준 낮고 볼거리도 없을까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무료 전시회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괴테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예술 작품 감상을 통해 교양을 쌓고 더 나아가 업무나 일상에 영감을 주는 전시회를 무료로 관람하는 것에는 "찾는 만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국내 유수의 갤러리에서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전세계적으로 핫한 작가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위해 전시하는 경우가 많아 작품이 소량 전시되지만 외국 현지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되어졌던 작품들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국공립 미술관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무료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벅찬 감동도 있지만 가끔은 구민회관에서 어린 아이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신선한 자극을 준다.  

기자는 얼마전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PKM트리니티 갤러리에 다녀왔다.  '헤르난 바스'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핵심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10년 화업 짧은 기간에도 세계 미술계의 열띤 러브콜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단연 신선한 감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아리랑TV를 통해 그의 예술관, 이번 전시회에 대한 작가의 설명 그리고 그림 속 뒷 이야기들까지 미리 접하고 나서 헤르난 바스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은 뉴욕과 런던의 유수의 갤러리에서만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최초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고작 5점의 그림만 걸린 휑한 갤러리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수원에서 청담동까지 고작 5점의 그림을 보러 왔나 싶은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나마 운이 좋게도 큐레이터 설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특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배경이나 작품 속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큐레이터 설명은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깊게 만들어 준다.  다소 빈약해 보일 수 있는 작품의 수에 대해서도 "전시만 하면 죄다 팔려나가는 인기작가 헤르난 바스의 작품을 구하기 힘들었다.  3년 동안 기다려 최신작 그림 다섯 점을 겨우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이층집이 보인다.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은 저택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런데 창문의 유리창은 깨져 있고, 지축은 흔들려 나무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있다.  소년의 손에 돌을 보고 그 저택에 돌을 던진 것이 소년임을 알 수 있다.  '왜 돌을 던졌을까?'라는 궁금증부터 긴장감에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기이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림 앞에 섰다. 
이 그림에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몸집도 힘도 자신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골리앗에 맞서 돌 하나로 제압한 다윗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돌을 든 소년이 다윗이고 돌이 향한 저택의 주인이 골리앗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 저택은 추상 표현 주의의 거장 윌렘 드 쿠닝의 실존 스튜디오라고 한다. '윌렘 드 쿠닝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나?' '그의 작품에 대한 반감의 표현일까?' 

사실 작가는 드 쿠닝의 팬이라고 한다. 이 작품도 드 쿠닝에 대한 존경심과 오마쥬를 표현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중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문화권에서의 존경심의 표현과는 많이 달라서 놀라웠다. 존경하는 선배 거장의 스튜디오에 돌을 던지는 파괴적인 행위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고?  '누군가의 재능이 부럽다.  
닯고 싶다. 그래서 노력한다. 노력을 해도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에 대한 존경은 질투로 바뀐다.  질투심이 찬미의 감정과 뒤섞이면 못난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깊어지고 그것은 대부분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이 인간이 본성이다. 
헤르난 바스도 범접할 수 없는 대가의 예술세계와 자신의 막막하고 절실한 현실을 이렇듯 파괴적인 감정을 뒤섞어 표현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도 한낱 나약한 인간이란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그림에는  어디서 한 번쯤은 본 것 같은 섬세한 표현법 내지는 명화의 일부분이 그의 작품안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란 작품에도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 안개 낀 바다의 풍경과 오른편 위, 아래에는 붓을 3개를 들고 표현한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이 배여있다. 이에 대해 헤르난 바스는 "거장 미술가들의 화풍과 기법을 모방해 마치 '디제이가 음악을 믹싱하는 것'처럼 여러 선배들의 그림들을 차용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즐겨한다"고 말했다. 

거장의 화풍과 동시대 작가들 그리고 기존의 다양한 문화 예술작품을 재구성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의 창의성에 대해 창착하는 예술가라기보다 편집자에 가깝다고 잠깐 동안 고개를 갸우뚱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분명 기존 거장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모네의 그림은 서정적이다. 색깔에도 성격이 있다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과 닮아있다. 대부분의 그림에는 수줍은 듯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수줍은 신부의 베일이 그림위에 얹어져 있는 것 같다. 반면 헤르난 바스의 그림은 만화가 연상될 만큼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가 주를 이룬다.  붉은 계열의 퍼플을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에는 호불호가 확실한 거침없는 성격의 사람이 엿보인다. 동일한 표현법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그가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술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모방 기술(mimētikē technē)이다.  그렇다고 헤르난 베스가 모방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스티브잡스와 닮아있다.  애플에서 나오는 아이폰, 맥북, 아이팟등은 기능 측면에서 기존 시장에 나와 있던 디지털 기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에서 나오는 핸드폰, 노트북등을 출시 전 부터 예약하고 앞다투어 구매하는 것은 기존의 것에 디자인의 가치를 더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낸 전략의 결과이다. 

헤르난 바스의 그림이 십여분 만에 팔리고 하루 17시간씩 그림을 그려야 할 만큼 컬렉터들에게 소장가치를 인정받는점도 기존에 것을 그의 시선으로 해석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창착물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유일무이', '전무후무'라는 고유성은 그를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키운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만화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유치해 보인다거나 가볍다거나 익살스런 만화의 특징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애플이 주목을 받은 것은 무미건조하고 생명력이 없는 '디지털 기기'에 스토리를 불어 넣었다는 점이다.  이전에 IT산업은 획기적인 기능과 점점 작은 사이즈에 초점을 맞추었다.  애플은 디지털 기기에 철학을 녹이며 인문학적인 통합을 시도했다.  헤르난 바스 또한 단순히 보고 감탄을 자아내는 '보는' 그림에서 그림을 보고 몇 페이지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만드는 '소통'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저 소년의 지금 마음은 어떨까등의 궁금중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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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David & Goliath(다윗과 골리앗) 아래 : The Horticulturalists Dream (어느 원예업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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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Tracing Shadows (그림자 쫓기) 아래 : amusement park jungle cruise (정글 탐험)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 그림 뒤에 있는 소년의 어린시절의 자라온 환경을 예측해보기도 하고 보일 듯 말 듯한 소년의 표정을 읽어내기 위해 애쓴다.  이런 사고의 활동은 일상속에서 자주 일어나는 익숙한 경험이다.  영화를 볼 때, 소설을 볼 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상상한다.  헤르난 바스의 작품을 보면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보는 것처럼 수많은 스토리가 머릿속에 끊임없이 저절로 생겨난다.  물론 그림에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이 녹아있다. 그 의도를 넘어선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치밀한 구성의 여러번의  반전이 있는 스릴러 영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그는 '엑소시스트'와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영국의 탐미주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되 이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회화를 구성한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 몽환과 고독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내면과 그림을 보는 나 자신 또한 소년과의 일체로 마치 그림 속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한 스토리속에서 나의 욕망과 내면을 발견하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헤르난 바스의 회화 작품에 또 다른 특징은 항상 등장하는 어린 '소년'이다. 이 소년은 아직 완성되거나 성숙되지 않은 시기로 '성장'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린다.  작가 자신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고뇌와 고독이라는 내면을 표출하는데 '소년'의 이미지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로 인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작가와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를 어루만져 주고 싶은 안쓰러움마저 느낀다.   
관람객 또한 소년의 이미지를 통해 누군가로부터의 맹목적 사랑을 꿈꾸는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인간 본연의 욕망과 마주한다. 소년의 이미를 통해 불안과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사회 속 인간의 여리고 내밀한 감성을 기이하면서도 다층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한 편의 꿈처럼 표현해 내는 역량에서는 헤르난 바스는 가히 독보적으로 평가받는다.

청담동에 있는 PKM갤러리는 회화 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까지 풍성한 전시를 무료로 제공한다. 8/24~10/12에는 이상남 서양화전을 감상할 수 있다.

<가볼만한 무료 전시회>
-이상남 서양화전, PKM 트리니티 갤러리 (8/24~10/12)
-THE ART ON YOUR WALL, 아트클럽1563 (~8/18)
-가오레이 전, 아라리오 청담(~8/19)
-MISSING LONDON, 종로의 프로젝트 갤러리 'ANOTHER STUDIO' (~8/24)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덕수궁 미술관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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