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친구 아버님의 유서
2012-08-10 13:27:32최종 업데이트 : 2012-08-10 13:27:32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서로 만나 형제 보다 더 친하게 지낸 지 오랜 친구가 있다. 
최근에 모처럼 점심을 하게 되었다. 친구는 연세가 8순 가까이 되시는 아버님께서 이제는 인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말을 꺼냈다.

아버님이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인지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시는걸 스스로 느끼시는것 같다며 더 늙어서 아무런 판단능력이 없는 때가 오기 전에 미리 갈무리할건 하고 정리할건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신거라 했다.
친구 아버님은 내가 잘 안다. 우리가 죽마고우이다 보니 내가 친구 집에 들러붙어 살다시피 했고, 친구놈도 우리집에서 몇날 몇일씩 기숙하며 같이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양쪽 집에 대해 서로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이이다.

친구 아버님은 공직에 계셨다. 그 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공직을 마무리하셨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이제는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해가 다르게 눈도 침침해지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아니하다신게 얼마전 일인데 부쩍 더 그러신듯 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녀들과 가까이 어울리고 때로는 자녀들의 도움을 받지마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 있다고 장담하겠는가. 

친구 아버님의 유서_1
친구 아버님의 유서_1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은 아들인 친구를 앉혀 놓고 "우리 내외는 곧 수원을 떠나서 우리 부부 두 사람이 고향으로 가서 살기로 했다"' 하시면서 포켓용 수첩을 보여주시더라 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해마다 정초가 되면 당신이 직접 써서 언제나 소지하고 다니시던 유서였다.
친구는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유서가 적힌 수첩을 내게 보여주었다. 

유서 내용은 이러했다.
"한평생 네 엄마 만나 너희들 낳아 기르고 손자 손녀 귀여움 보다가 먼저 간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못했고 너희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없지마는 우리 가정은 무척 행복했다. 나는 30년 공직생활을 마칠 때까지 나 개인과 가족들에게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을 자부한다. 형제간 우의 돈독히 하고, 올바른 생각과 몸가짐으로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회생활을 해라. 나 떠난 후에 홀로 남는 네 어머님 이 세상 마칠 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잘 모셔라. 얼마 안 되는 유산은 모두 네 엄마의 것이다. 엄마 가신 후에 너희 형제들 사이 좋게 나누어 가져라. 사랑하고 우애하고 화목했던 우리 가족들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것을 받아 든 친구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버님은 해마다 정초에 유서를 다시 쓰곤 하신다 한다. 어떤 상황이 새로 바뀌면 거기에 맞게 쓰시고, 또 특별히 변할게 없으면 작년 것을 그대로 옮기시기도 하면서 벌써 몇 년째 유서를 마리 작성해 두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서를 쓰고 나면 마음이 그토록 편하고 그 동안 지녔던 세속적인 욕심도 이제 없어지신다는 것이다. 

인생을 담담히 마무리하시려는 친구 아버님의 결단과, 유서를 보고 난 내 자신과 지금의 우리 사회상을 되돌아보았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는 경구를 되뇌면서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하는 나는 분수에 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 욕심 때문에 나의 직장과 사회에 누를 끼치고 있지는 아니한가? 

1년에 한번정도는 모두가 한번쯤 눈을 감고 마음속에 유서를 써보는건 어떨까.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내가 내일 세상을 떠날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유서를 써 본다면 지난날의 내 과욕과 이기심은 절로 사라지지 않을까.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