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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해 서로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회
2012-08-01 14:28:12최종 업데이트 : 2012-08-01 14:28:12 작성자 : 시민기자   문성희

저녁에 시간이 좀 남아 머리라도 식힐 겸 '말아톤'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오래전부터 그 영화가 참 좋은 작품이라는 영화평을 들은 터였는데 꼭 보겠다는 마음만 먹은 채 하루 이틀 미루다가 드디어 작심하고 DVD를 빌려 온 것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같은 여성으로서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다. 이 나이에 특정 연예인에 호감을 갖는다는 것도 약간 웃기는 일이지만 그 당사자가 연예인이라는 것만 빼 놓으면 개인적으로 참 괜찮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녀가 진행하는 FM방송도 즐겨들었고 무척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도 좋아한다.
아무리 급한 일을 만나도 큰소리치거나, 서둘지 않을 것같이 생긴 여자다. 차분하기로 소문난 그 여주인공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자폐증 아들이 주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상황을 어떻게 뛰어넘어갈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의 관심사는 여자 주인공에서 다른 각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폐증을 앓는 장애우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렇게도 각각일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쉽지 않은 일임을 또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어떤 장애든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본다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또 다른 고통일거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또다시 깨달았다. 영화 속에서도 그랬으니까. 심지어 한 가족들에게 조차도 외면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둘째 아들은 둘째 아들대로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행복에 겨운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면 어머니의 고군분투하는 삶에로의 의지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영화의 한 부분의 대사를 기억한다. 울먹이면서 외치던 여자 주인공의 한 마디! 
"내게 소원이 있다면 저 아이가 나 보다 하루 빨리 죽어주는 것입니다." 
이 대사는 내가 영화 관람을 다 마친 한참 후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 대사가 가슴 깊이 남은 이유는 중증 장애를 가진 장애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보호자라는 의미를 떠나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보호자라고 한다면 어머니가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면 안 될 자폐증 아이들의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가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장애를 입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명씩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타고난 장애만이 장애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장애에 대한 위험성에서 어느 누구도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며 숨겨놓고 지낼만한 소수의 사람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언제 우리 자신들이 장애가 될지 모르는 일이며,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 친지 친구 직장동료 등 누구에게나 닥칠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이 울면서 외치던 "저 아이가 나보다 하루 빨리 죽어주는 것입니다." 라는 절규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절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서도 대학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분도 계시고, 올림픽에 나가 펄펄 뛰는 분도 계시다. 그러나 이런 분들보다 보이지 않는 곳, 어렵고 힘든 위치에서 고통스럽게 견디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장애인에 대해 서로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회_1
장애인에 대해 서로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회_1

언젠가 읽은 한 장애인의 수기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겨울에 소아마비로 인해 걸을 수 없는 자신을 업고 1시간 가까이 걸어 집에 데려다 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가 너무 무거웠는지 집에 닿았을 때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 흘리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를 업고 오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셨을까? 아니면 또 나 죽으면 넌 어떡하나 생각하면서 우셨을까"

그의 일기 속에 나오는 엄마의 생각 '나 죽으면 넌 어떡하나'가 가슴을 울린다. 왜 우리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나든 너든 그든, 누구든 장애인이 되었을 때 우리 서로 서로가 "나요" "나요"라며 보호자가 되겠다고 자처하며 배려하고 섬겨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영화 말아톤을 다시금 머릿속에서 투영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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