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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희주
2012-08-02 00:56:03최종 업데이트 : 2012-08-02 00:56:03 작성자 : 시민기자   박나영

날이 뜨거워 도시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가 걱정 된다며 시골에서 시어머님이 올라 오셨다. 도시에 사는 모든 자식들이 고향에 덩그러니 남아 계시는 부모님 걱정 하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노친네가 젊은 자식 걱정스러워 도시로 올라오시니 원... 죄송스럽고 무안하고 면목이 없다.

남편이 좋아하는 포기 배추김치를 손수 담가서 들고 오시느라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오냐, 오냐"하시며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 주시는 어머님이 올라오시자 아이들은 집에 손님이 오면 괜히 들떠서 하지 말라는 짓을 더 하기도 한다. 

시어머니 앞에서 예의 바르고 예쁜 짓만 했으면 싶은데 딸아이는 "싫어 잉, 놀아줘 잉" 코맹맹이 소리가 끝이 없었다. 들어가서 일기 쓰고 책상 정리하라는 말에, "안아 주면 쓰지~잉" 하고 안겨드는 딸아이를 보고 시어머니께서 한숨을 쉬셨다.  "저렇게 응석 부리고 엄마한테 안기고 싶은 나인데, 희주는…." 

희주는 시댁의 앞집에 사는 아이다. 키도 안 크고 살도 안 찌고 날이 갈수록 눈치만 는다.
지난 5월 어버이날때 시댁에 갔을 때도 희주를 보았다. 딸아이와 동갑이라 시골에만 가면 늘 희주를 데려와 같이 놀곤 했다. 희주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유난히 컸다. 과자를 주자 허겁지겁 먹고는 더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냉장고 문을 열면 따라와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배가 고팠는지 희주는 늘 그런 식이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그 때문인지 먹을 것을 가지고 동네 사람들도 은근히 희주를 눈치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희주는 식탐보다는 다른 무엇에 굶주려 있는 듯했다. 

희주 엄마는 태국 사람이다. 스물한 살에 한국으로 시집와서 희주를 낳았다. 외국서 시집온 다른 며느리보다 한국말도 빨리 배우고 한국음식에 적응도 잘한다고 동네에서 칭찬하는 편이었다. 다른 태국 아가씨와 한국 남자와 중매도 서 주었다고 했다.

그런 희주 엄마가 친정 나들이를 갔다. 희주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국 며느리의 첫 친정 나들이라고 손수 장만한 옷가지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태국으로 간 희주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온다더니 한 달 뒤에 온다 하고 두 달 뒤에 온다 하고. 그렇게 간 것이 2년이 넘었다. 나중에 희주 할머니가 살펴보니 희주 돌 반지며 통장의 돈까지 다 챙겨 갔다고 했다. 

"희주 엄마가 영영 안 오려나 봐요. 다문화 가정 신부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희주 아빠는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희주도 애가 어미가 없으니 꼬질꼬질 허당께. 보기에도 딱혀" 어머니도 함께 한숨을 쉬셨다.

잠시 후 퇴근하는 아빠에게 딸아이가 매달렸다. 할머니가 오셔서 기분이 좋은지 아빠 다리를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보시고 시어머니께서 또 한마디 하셨다. 

"희주도 제 아빠만 오면 좋아서 난리를 치다가 아빠가 가고 나면 풀이 죽는 당께" 
희주 아빠는 희주를 시골에 맡겨 놓고 읍내에 나가 공사판에서 일을 한다. 1주일에 한번정도 보는 아빠에게 얼마나 응석을 부리고 싶을까. 

우리 집 딸아이는 뭐 사달라고 조를 때면 아빠에게 온갖 아양을 떨어 아빠를 살살 녹인다. 그러면 아빠는 기분 좋게 딸아이의 꾐에 빠지고 만다. 희주 아빠에게도 희주는 눈에 넣고 싶을 만큼 귀여울 텐데 떼어놓고 돌아서는 마음이 어떨까. 희주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시댁의 농촌 마을뿐만 아니라 전국 농촌에는 우리 농촌 총각들을 따라 결혼이주를 해서 온 외국인 신부들이 참 많다. 모두 다 한국인이 되어 잘 살고 착하다. 희주 엄마도 언젠가 희주 소망처럼 그의 곁으로 돌아와 착하게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희주_1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희주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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