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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웃의 촌수는 여전히 4촌이다
2012-08-02 01:57:57최종 업데이트 : 2012-08-02 01:57:57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아파트 조경을 다시 하는 문제로 주민 총회가 한두 번 열렸는데 그동안 회사 일로 바빠서 참석을 못하다가 얼마 전 3번째 열린 총회에 참석하였다. 총회가 참석하는 인원이 자꾸 줄어들면서 불참하는 가구에는 약간의 벌금도 물게 하고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총회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는 집이 거의 절반쯤이다. 

한 쪽에서는 몇 가지 불편한 점을 내세워 총회 참석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과거 반상회라는 게 있었을 때와는 달리 이젠 그 반상회마저 유명무실 해졌으니 이런저런 명목으로 총회라도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총회라는 명목마저 없다면 이웃과의 접촉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총회 자리에서 얼굴들을 보고 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고, 정 할말이 없으면 최소함 날씨 얘기라도 주고받는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어깨를 맞대고 서 있으면서 눈은 천정이나 바닥을 보는, 너무나 어색한 침묵은 누구든 견디기 싫은 일일 것이다.

초면의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외국의 분위기에 비해 우리의 정서는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관심한 편이니까.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입주한 지가 십여 년을 넘긴 곳이지만 아직 새 아파트이다. 이제 스스럼없이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던 이웃이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기도 하고, 어느 날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쓰레기 분리를 하기도 한다. 

아파트 이웃의 촌수는 여전히 4촌이다_1
아파트 이웃의 촌수는 여전히 4촌이다_1

이번에 총회를 가진 뒤 만난 16층의 주인도 초면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마 이런 기회로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같은 현관으로 출입을 하며 호수만 다를 뿐인 주소를 가지고 살지만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칠 것이다.

총회에서는 조경문제에 대한 상의가 끝난 후 요즘의 집 값 동향으로 화제가 옮겨지고 새로 짓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의 시세 전망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세는 학군을 반영하는 것이라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이사를 갈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이제 십 년 넘게 살았으니 이 아파트를 팔고 옮겨 앉을 시점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 부동산 경기가 너무나 안 좋아 집을 내놔도 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비관론도 들렸다. 뉴스 시간이면 제목을 달리해서 새롭게 내놓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현실에서는 몸에 안 맞는 옷인 모양이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나는 만날 때면 언제나 함박꽃처럼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초등학생을 둔 우리 동의 젊은 엄마가 요즘 왜 안 보이는지, 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며 쓰레기를 주워들고 계시던 할아버지도 왜 안보이시는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왁자지껄한 소리에 뒤 베란다에 나가 보았더니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함 사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함진 애비인가 싶어 저녁 식탁을 대충 치우고 구경을 제대로 하려고 나섰더니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 모두 다 어디 갔지? 아파트 정원에서 거하게 한 상 받아 놓고 제대로 한번 팔아 볼 줄 알았는데..." 어느 층 몇 호에 사는 아가씨가 시집을 가는지? 함은 왜 그리 쉽게 들였는지? 궁금하고 아쉽기만 했다. 

결혼과 동시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한동안 살았던 오래전 대전의 5층짜리 아파트가 자주 생각난다. 그때는 저녁에 취침시간이라야 모든 집의 문들이 꼭꼭 잠겼다. 이웃의 누가 아픈지, 누가 기쁜 일이 있는지 훤히 알고 감정을 나누어 가졌다. 계절 따라 호박죽이며 부추전, 김치보시기가 계단을 타고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누구네가 직장의 발령을 받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면 오랫동안 휑한 가슴을 싸안았던. 

그런 기억도 이제는 너무나 가물가물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는 곳도 달라지고, 아파트가 마천루처럼 높아만 가도 우리네 사람이 가진 이웃간의 정은 늘 나누고 싶은 게 내 작은 소망이다.

여전히 이웃의 촌수는 그대로 4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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