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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잖아요
2012-08-02 08:40:59최종 업데이트 : 2012-08-02 08:40:59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다녀왔습니다' 라는 말을 한마디 툭 던지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열어보면 아이는 가방만 내려놓곤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랑 주고받는 휴대폰 문자. 

저년식사 시간, 텔레비전을 켜놓고 가족들은 모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나 프로그램에 눈을 주면서 밥을 먹는다. 식사 시간 내내 오가는 대화는 거의 없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제 블로그를 관리하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를 마친 남편은 신문을 뒤적이고, 나 역시 설거지를 마친 뒤 드라마 시간에 맞춰서 리모컨을 찾는다. 

남편은 이내 소파에 누워 신문을 뒤적이다 9시 뉴스와 스포츠뉴스를 기다린다. 10시가 넘으면 남편은 인터넷 검색을 하고 나는 다시 드라마를 시청한다. 밤이 깊어 자정이 가까워지면 가족들은 각자의 꿈나라로 떠난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차 안에서, 혹은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문자를 보낼 것이다. 안 봐도 훤하다. 한낮의 거리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문자를 보내거나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를 하고 있다. 사람들과 스쳐 지나면서도 계속 혼자 떠들고 있다.

아빠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잖아요_1
아빠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잖아요_1

"너희들, 오늘부터 저녁 식사 때는 휴대폰 방 안에 놔두고 나와. 알았지?"
"왜요? 친구들이 문자 할텐데"
"밥 먹는 시간 길어봤자 20분인데 그것도 못참냐? 식사시간 동안 문자 안한다고 죽고 사는 일 아니잖아"
"아빠는 왜 우리 의견은 듣지도 않고 시키기만 하는 거예요?"
"이건 너희들 의견 듣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너, 큰놈. 저녁 식사 할 때 단 1번이라도 스마트폰 네 방에 놔두고 나온 적 있어? 아빠랑 말 한마디 나눈 거 있냐고?"
"그럼, 엄마 아빠는요. 맨날 텔레비전 보잖아요"

순간 찬물을 쫙 끼얹은 듯한 식탁 분위기. 아이들 항변도 틀린 건 아니다. 나도 매일 TV를 켠 건 아니지만 아이들 눈에는 TV만 보는 엄마로 비칠 수 있었고, 남편 역시 제 녀석들에 대한 관심보다 신문과 TV만 보는 아빠로 비칠 수 있었을 법 하다.

가족간의 대화가 점점 사라지자 남편은 결국 아이들에게 밥 먹을 때만큼은 휴대폰 방안에 놔두고 나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아이들의 항의도 받아들였다. 우리 부부는 TV시청시간을 현재보다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사실 위에서 그린 한 가정의 저녁 풍경이 요즘 대부분의 사는 모습이 아닐까.

모두가 하나이고, 글로벌이고, 세계가 모두 우리 품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 혼자 아닌가. 같이 있지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대화하고(전화기 너머 상대가 있지만 옆에서 보면 혼자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혼자 컴퓨터를 켜놓고 있다.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혼자만의 세계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사는 것이란 곁에 앉아서, 혹은 마주보면서 상대의 표정이나 눈빛과 손짓 등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악수도 하고 툭 쳐보기도 하면서 서로의 입김이나 체온을 느끼며 부대끼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디 긁힌 자국이 있으면 같이 걱정도 하고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면 위로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짧은 대화라도 나누고.

예전엔 집 전화로 식구들을 찾으면 전화 건 이와 전화 받는 사람이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그 다음에 찾는 사람을 바꾸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바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 아이 친구들 인사 받을 일도 별로 없다. 집에 앉아서 쇼핑을 하고, 산과 바다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을 수도 있으니 점점 더 삭막해 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식사시간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우리 부부도 TV시청 시간을 확 줄이고 나니 저녁 먹는 시간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떨그럭, 떨그럭... 식기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식사시간에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처음의 어색함이 지나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우린 역시 가족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너 이번 방학 때 어디 가고 싶은데 없니?"
"아빠가 데려다 주시게요? 지금 월드컵 하는 영국에 가보고 싶어요... 헤헤" 농담이 나온다.
"서울 중앙박물관에서 터키 문명전 하는데 그런 거는 안보고 싶어? 친구들이랑 그런데도 가 보고 그래" 어느새 남편도 아이들과 가까워지려고 뭔가(?)를 준비해 온 것이다. 
"그래. 그런 거 보려면 터키 공부도 좀 해야겠네. 미리 책도 좀 읽어봐. 요즘 날도 뜨거운데 도서관이 최고라더라"나도 거들었다. 

작은 시도이지만, 벌써 시작했어야 할 식사시간 가족간의 대화. 우리 가족은 벌써 수다쟁이들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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