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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쟁이 유전자' 물려준 아빠와 함께 부녀 산행
아빠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덜어드리는 딸 되기
2012-08-02 10:10:04최종 업데이트 : 2012-08-02 10:10:04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산쟁이 유전자' 물려준 아빠와 함께 부녀 산행_1
있을 때 잘하는 딸 되기

우리 집 부녀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요즘 한창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로 떠오르고 있는 '아빠와 아들'이다. "밥 먹으러 가자!"라는 소리에 자다가도 번뜩 일어나는 아들의 모습은, "산이나 갈까?"라고 아빠가 한마디 하시면 어느새 등산화를 신고 있는 내 모습 같다. 

이날도 그러했다. 애인도 없어서 데이트도 안하고 주말을 재미없게 보내는 날 보더니 "산갈까?"라고 묻는 아빠 말에 좋다고 등산화를 동여맨 나. 그렇게 우리는 당분 보충용 초콜릿 과 사과 2개를 챙겨서 근교 청계산으로 향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나는 내내 헤벌쭉 거렸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아빠는 진작 올걸 그랬다며 도리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차를 세워둘 곳이 없을 만큼 오르막길 마다 주차가 되어 있어서 점심 먹을 곳을 미리 정하고 그곳에 주차를 했다. 

서울에서부터가 아닌 의왕, 과천 부근으로 오르는 청계산은 사실 산보다는 수목원, 휴양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 피톤치드로 가득한 곳! 피톤치드는 나무들이 각종 병균과 곰팡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이다. 인간이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 신선한 공기와 향내를 들이마시면서 호흡하면 피로가 풀리고 심신이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피톤치드 효과 때문이란다.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피톤치드는 참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코스를 잘못 생각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올랐지만, 초록 축제의 향연에 젖은 우리 부녀는 자연이 주는 선물에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지나가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오랜만에 부녀 산행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역시 산에 오르니 아빠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평소엔 과묵하신 편이지만, 딸 사랑이 가득한 아빠는 가끔씩 이렇게 기회가 되면 굵직 굵직 하게 인생을 사는 법을 말씀 하신다. 그 이야기는 실로 다양하다. 어른들을 공경하는 자세와 사회생활을 하는 법부터 불법 다단계, 덧붙여서 남자 조심하라는 말까지. 매번 다 안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나지만, 사실은 이런 말을 해주는 아빠가 있어 참 감사하다.

'산쟁이 유전자' 물려준 아빠와 함께 부녀 산행_2
아빠의 뒷모습

잠시 풍경을 찍느라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아빠가 날 앞서 걸어가셨다. 그리고 난 자연스럽게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뒷모습. 언젠가 부터 아빠의 뒷모습에서 먹먹함과 무게를 느끼곤 했다. 세상의 짐을 다 떠맡은 듯 한 느낌. 산이라 그런지 이날은 아빠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지 않았지만, 혹여 라도 짐이 너무 무겁다면 '이제 좀 내려놓으세요 아빠.'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작가, 전 월드비전 긴급 구호팀 팀장,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롤 모델로 불리 우는 '한비야' 씨는 시간만 나면 산에 가는 산쟁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을 자주 갔다는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중 하나가 '산쟁이 유전자'라고 책에서 고백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부녀야 말로 제2의 한비야 부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그 유전자가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나또한 나만큼 산을 좋아하는 산쟁이 아빠의 영향을 받아 산을 자주 오르는 것 같다. 

하산 후 끝내주는 묵밥과 국수를 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헌데 연인과 함께, 엄마와 함께,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은 보였어도 부녀 산행을 온 사람들은 도통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내 친구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이 아빠가 되어버렸다며 아빠와 함께 산행을 하는 날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여자입장에서 엄마와 딸은 친구이자 애인이 되기가 쉽지만, 아빠와 딸은 멀어지면 멀어졌지 가까워지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바꿔서 보면 결국엔 우리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둥은 다름 아닌 아빠다. 당신은 말을 안 하시지만 사실상 참 많이 힘드셨을 게다. 

갑자기 부녀 산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어지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집안에서 엄마와만 놀고 아빠는 소외 시키는 딸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아빠와 함께 손잡고 가까운 산이라도 오르길 권한다. -커다란 울음으로도 그리움을 달랠 수 없어 불러보고 또 불러 봐도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들을 때마다 먹먹해지는 김경호의 '아버지' 가사처럼 우리는 결국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산쟁이 유전자를 물려주심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는 퇴근 하신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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