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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심은 사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2012-08-09 14:37:11최종 업데이트 : 2012-08-09 14:37:1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순자

"어? 여보, 여기 사과 달린것좀 봐. 히야, 세상에..."
주말에 어머님 염색좀 해 드리려고 고향에 내려간 김에 뒷산 깊은곳에 있는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어머니가 심어놓은 오이를 따러 갔더니... 갑자기 남편이 깜짝 놀래 목소리를 키웠다.

몇해전 봄, 남편은 날더러 고향 집 근처 어딘가에라도 나무를 좀 심어두자고 제안했다. 기왕이면 사과나 배 복숭아 혹은 포도같은.
굳이 나쁠게 없는듯 해서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밤나무, 감나무 같은걸 심는게 어떨지 생각을 해 봤다. 
그러나 이런 나무들도 그냥 심어 놓고 나몰라라 방치하면 말짱 헛일이기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 끝에 사과나무를 심기로 하고 그해 봄에 묘목시장에 들러 부사사과 3그루를 사다가 심은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고향집이니 전원농장 가꾸듯 짬짬이 내려가 바람도 쐬자는 생각이었다. 그해에 심은 나무엔 내 이름, 아내 이름과 아이들 이름을 새겨 표찰까지 만들어 달았다.
그리고 잘 가꾸면 아이들이 자라서 할머니댁에 놀러와서 이 유실수를 따먹으며 자연 공부도 할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몇년 전 심은 사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_1
몇년 전 심은 사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_1

그러나 이런 결심은 의례히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 다음해부터는 싹 잊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집 문제, 직장 문제, 승진 문제, 대출 문제 등등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끝도 없이 이어졌기 때문에 나무 가꾸는 일은 완전 까먹어 버렸다. 
그렇게 몇년이 흐른 뒤 어느날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후 심어 둔 나무는 우리 부부의 관심 밖으로 완전히 멀리 사라졌다. 

하루 빨리 내집 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던 우리는 갑자기 아버님의 병환으로 많은 치료비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내집마련의 꿈이 점점 멀어져 갔다. 수입은 늘지 않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지출은 늘어만 가니 별수 없었다.
결국 살고 있던 전셋집 마저 줄여서 이사를 했는데 그게 하필 날짜도 12월 초순이었다. 추운 겨울날, 우리 부부는 눈보라를 맞으며 이삿짐을 옮겼다. 그렇게 튼 보금자리에서 우리 는 한동안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버틴 후 최근에 3년정도 전부터는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살림살이를 일구며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금년 여름을 맞았다. 
토요일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고향 시골집에 도착해 뒷산 아래 손바닥만한 밭으로 오이를 따러 간 남편이 깜짝 놀라서 외친 첫마디가 "사과 달린것좀 봐"였다.

처음에 심어 놓았을 때는 1m 조금 넘던 사과 나무가 훌쩍 자라 3그루가 서로 경쟁이나 하듯 수백개의 사과 열매를 다닥다닥 열리게 한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걸 솎아주면 아마도 튼실하게 잘 자랐을텐데 솎아주기는 이미 늦었고 운 좋으면 올 가을에 붉게 익은 사과를 좀 따 먹을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사과나무의 주렁주렁 열린 과실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재크의 콩나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순간 나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어만 놓고 제대로 해 준 것도 하나 없는데 저 혼자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무심한 '부모'를 원망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 준 녀석들이 고맙기만 했다. 

이제는 고향 집에 갈때마다 나무부터 살펴볼란다. 
그리고 "잘 지냈냐? 그동안 별 일 없었지?"라며 인사를 건넬 생각이다. 그렇게 자란 나무들이 농약 한방울 구경도 안한 웰빙 사과를 선물로 줄 것이고, 결실의 기쁨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자연과 대지와 나무는 참 대단하다. 

멀리 고향집 텃밭에서 묵묵히 우리 가족을 응원해 준 나무들처럼 우리도 착하게 열심히 살것이다. 언젠가는 인생의 꽃과 달콤한 열매를 맺을수 있을거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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