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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전의 백과사전, 책이라는 물건의 경이로움
2012-07-30 09:19:52최종 업데이트 : 2012-07-30 09:19:52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남

몇십년전의 백과사전, 책이라는 물건의 경이로움_1
몇십년전의 백과사전, 책이라는 물건의 경이로움_1

어릴 적엔 만화책 한권도 사 보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기만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소와 쟁기를 끌고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하시던 어머니 아버지. 그 살림살이래야 오죽하겠는가.

농사일을 하며 오남매를 키운 부모님은 노동으로 허리가 휘어지고 손마디가 굵어진 채 이제 팔순이 다 되셨다. 어린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갔다 오면 한 솥 가득 물 끓여 놓고 소 먹이를 챙겨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야말로 어른이든 아이든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인 시절이었고 농촌 환경이 그러했다. 

집에 있던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간혹 사주셨던 참고서가(당시에는 전과라고 불렀음) 고작이던 그 시절에 나는 책을 무척 읽고 싶어 했다.  그 욕구를 채우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나는데, 친구에게서 빌린 구닥다리 낡은 책을 밤늦도록 읽거나 너덜거리는 만화책을 빌려다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을 돌아다니며 책장사를 하시는 분이 우리 집에 들르신 적이 있었다. 중간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값비싼 전집류를 취급하는 아저씨였다. 어머니는 외출 중이었고 아버지와 어린 우리들만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책장사의 현란한 말솜씨와 노란색 하드커버로 멋지게 포장된 20여권짜리 어린이 칼라 백과사전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린 우리들은 소 먹이 더 잘 끓이고 꼴도 더 잘 베어다 소에게 먹이겠다는 철썩 같은 약속을 드리며 그때 아버지를 엄청 졸랐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아버지는 그 당시에 꽤 비싼 값의 그 전집을 우리에게 사주셨다. 나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판 싸우셨다는 것이 기억이 나지만 뭐 어떠랴. 그 컬러풀하고 멋진 책은 이제 우리 것이 된 것이다.

그 책에 소개된 인물들과 외국의 요리들, 형형색색의 꽃들과 파충류 종류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달달 외워졌고 학교가면 내가 습득한 그 지식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그 책은 우리로 하여금 책 중에 백과사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주었고 각 분야별로 뭐든지 알게 해 주는 만물박사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들어가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뭐든지 알 수 있지만 그땐 어디 그랬나? 책장사야 물건을 팔면 그만이었겠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 책장사 아저씨 덕분에 상상 밖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최고의 책을 얻은 것이다.

'공산주의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어? '이라는 충격적인 나의 질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친구들은 한명도 대답을 못했고 나는 흐뭇한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그 백과사전은 한동안 나의 지적욕망을 채워주는 매개체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 읽게 한다고 동화나 그림책을 사면 내가 먼저 흠뻑 빠져있고 TV에서 캔디가 나오면 너무나 반가워 아이들보다 더 몰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뒤늦게 그림이나 사진, 도자기를 배우는 아줌마 할머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하고픈 게 너무 많은 나이든 여자들을 나는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적 욕구를 풍족하게 채웠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여든이 넘으신 나의 시어머니는 가끔 피아노를 치신다. 아니 건반을 두들기는 수준이다. 악보를 읽을 수도 영어알파벳도 모르지만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은 느끼시는 분이다. 

배움이란 뭔가. 배움과 지적 욕망에 대한 우리의 본성은 결국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우리의 가슴과 뇌에서 항상 살아 일렁이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이런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이 뭔가를 하려는 모습을 보고 나이 얘기를 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가 보다.

실낙원을 쓴 밀턴은 단테의 신곡을 읽기 위해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까지 독일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역시 배움이란, 그리고 지적 욕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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