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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 그리고 추억
2013-06-17 09:05:32최종 업데이트 : 2013-06-17 09:05:32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요즈음 길을 걷다 보면 온통 새까만 버찌 천지다. 
까만 알갱이들이 이사람 저사람에게 밟혀서 으깨지고 뭉그러져 도로가 지저분하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지저분한 바닥과는 다르게 새까맣게 윤기가 반들거리는 버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까치발을 들고 나뭇가지 하나를 휘어잡아 열매를 따서 입속에 넣어 본다. 

별 다른 맛도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손이, 나무와 입 사이를 왔다갔다 바쁘다. 모든 식물이 계절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벚나무는 그중에서도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꽁꽁 얼었던 겨울 추위를 물리치고 찾아온 봄소식과 함께 제일 먼저 찾아오는 꽃소식이 벚꽃이다. 나무마다 눈가루를 뿌린듯이 피어나 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벚나무가 꽃잎을 떨어뜨리고 산호 같은 빠알간 열매를 매달고 열심히 햇빛을 받아 먹더니 새까만 버찌로 변신하는 것이다. 

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 그리고 추억_1
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 그리고 추억_1
 
여기저기 흔하게 널려있는 수 많은 벚나무에 또 수 없이 매달린 버찌열매. 다른 열매들처럼 특별한 쓰임새가 없는걸 보면 특별한 맛도, 별다른 약효도 없는 열매인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까맣게 윤기나는 버찌열매만 보면 꼭 한번쯤은 가지를 휘어잡아 따먹어본다. 너무 물렁해서 손에서 터지는 열매도 많다 새카맣게 손을 물들이면서 단맛도 신맛도 아닌 버찌를 열심히 따먹는건 아름답게 기억되는 추억 때문인것 같다. 

내 어릴때 살던 동네앞 언덕배기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이 팽나무였다.
버찌랑 비슷하게 생긴 까만 열매인데 속살은 대추과육과 비슷하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열매다. 동네 어린 꼬맹이들이 날마다 먹어도 먹어도 팽나무 열매는 늘 그대로 였던것 같다. 

날렵한 남자 아이들은 그 큰 나무를 다람쥐처럼 타고 올라가서 싱싱하고 깨끗한 팽나무 열매를 따 먹었지만 나 같은 여자 아이들이나 아주 어린 꼬맹이들은 나무 아래 지천으로 널린 열매를 맛있게 주워 먹었다. 
물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로는 벚나무가 즐비하여 버찌가 주렁주렁 열렸지만 팽나무열매에 맛 들인 우리들은 아무도 버찌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버찌에 관한 유일한 관심은 오며 가며 심심할때 한번씩 발로 밟아 으깨며 놀때 뿐이었다. 
그랬는데 팽나무 열매를 어린시절 이후로는 본적도 없고 들어본적도 없다. 그 열매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그 동네를 떠나온 나는 어린시절 추억이 그립고 추억과 함께 팽나무 열매를 주워 먹으며 놀던 그 시절 친구들이 그리울때면 비슷하게 생긴 버찌 열매를 따 먹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 그리고 추억_2
버찌가 익어 가는 계절, 그리고 추억_2
 
얼마전 동네친구랑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다. 집 앞에 있는 학교 뒷편으로 꽤 세월을 겪었을법한 벚나무가 즐지어 서 있는데 앵두만한 크기의 버찌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게 참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역시나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또 열매를 따서 입속에 넣는 순간 그동안 먹어 봤던 버찌의 맛 하고는 차원이 다른것이 그야말로 새콤달콤 하면서 제법 과일다운 맛이 나는 것이다. 

친구와 둘이 연신 가지를 휘어잡고 정신없이 열매를 따 먹다가 손을 보니 새까맣게 물이 들어 있는게 꼭 개구쟁이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가지고 가서 가족들도 먹이고 싶었지만 담아갈 도구가 없어 아쉬운채로 나 혼자만 실컷 먹고 행복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버찌하면 생각나는게 또 있다. 중학교때였나, 국어시간에 배운 위그든씨의 사탕가게에 나오는 버찌씨다.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조그만 소년이 사탕이 먹고 싶어 사탕을 사러가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던 버찌씨를 가져가 사탕값으로 지불한 것이다. 
그런데 사탕가게 주인은 그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버찌씨를 받고 거스름돈까지 내주는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5살때 십원짜리 동전 몇개를 가지고 아파트내 상가엘 갔었나보다. 그런데 위그든씨와는 많이 다른 슈퍼 주인 아저씨는 가차없이 아이를 돌려 보내서 집에 온 아이가 굉장히 상심했던 일이 있었다. 

그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 쓸모없는 버찌씨이지만 아이에게는 소중한 것인만큼 그 값어치를 소중하게 받아줄줄 알았던 위그든씨가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면 참 아름다운 세상이겠다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집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버찌가 지천으로 매달려있는 이 계절에 여러가지 추억을 떠을리게 하는 버찌가 내게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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