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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법에 어긋나는 이상한 장례절차
2012-07-25 16:32:41최종 업데이트 : 2012-07-25 16:32:41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며칠 전 직장 동료의 부친상에 문상을 다녀왔다. 빈소가 대전인 관계로 자동차로 두어 시간 이상 달렸다. 그 동문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기에 선대인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신 건 아닌가? 그 슬픔이 얼마나 클까?' 라는 생각에 단숨에 달려갔다. 

예법에 어긋나는 이상한 장례절차_1
예법에 어긋나는 이상한 장례절차_1

그런데 상가에 어린 아이들이 안보였다. 즉 고인의 손자 손녀들...이 아이들은 다 어디갔을까?
시민기자가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조용히 물었다.
"수원에 누구에게 맡기고 왔습니다. 학교도 가야하고…"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번 서너달전에 친구네 상가에 갔을 때도 이런 일이 있더니, 이번 직원의 경우도 아이들을 상례에서 제외하는 것은 어찌 이리 비슷한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들의 삶에는 예로부터 몇 가지 공통되는 의례가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요약하면 관혼상제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게 유행이 되고 있다. 
시민기자가 보기에 최근 이상한 현상들이 상가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어리둥절한 기분마저 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구성원 중에서 일부가 소외된 채로 의례가 치러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외된 가족구성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이날 직원의 아들 딸들은 분명 고인의 손자 손녀이건만 그 어른 가시는 길에, 그 어른이 세상 떠나 보내는 장례식장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옛날 효를 백가지의 행동의 근원으로 삼을 때, 그 의도는 아마도 가정에서부터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너와 내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정의 테두리 속에 2세가 탄생하며, 가정은 곧 사회의 근간이 됨을 의미한다. 
같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 사회에 적자생존의 원리가 있다면, 인간의 삶을 화평하게 지속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는 아마도 가정에서부터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효가 어떠하고 가정의 도리가 어떠하다고는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세상이 변화되고 행동양식과 생활방식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어겨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 부모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한세대 넘었다고 참석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납득이 어려운 과오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참석을 거절했겠는가? 젊은 부모들의 편의주의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하나의 잘못에 불과하길 바란다. 

예전 우리 부모들은 절차도 까다롭고,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하는 관습에 너무도 불편하게 살아온 면이 있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관행을 자식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하다 보니 자꾸만 자녀들에게 가정의 대소사에 '바쁘면 오지마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해서야 되겠는가. 

더군다나 예전 상가집은 정말 부산하고, 어린아이들이 어디가서 눈 붙이기도 어려웠지만 요즘 장례식장은 그런걱정 전혀 안해도 될만큼 시설이 완벽하다. 
가족은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늘 함께하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진정 상가에서 손주들이 제대로 예를 다하여 먼저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효손의 뜻을 다하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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