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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녀(父女)산행을 즐긴다
2012-07-26 22:37:03최종 업데이트 : 2012-07-26 22:37:0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세상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슨 일을 하던 사람 개개인에게는 작고 사소한 계기가 있는 듯하다. '막연히, 어쩌다보니'라고 생각해도 가만히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무의식중에 깨닫곤 한다. '아 내가 그때 그 일로, 이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구나' 하고.

가끔씩 난 궁금했다. 내가 언제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어릴 적부터 좋아 했던 건 알았지만 그냥 어렴풋한 기억의 단편으로만 각인되어 있을 뿐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첫날. 첫 느낌. 첫 계기는 도저히 머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창고에서 먼지가 쌓여있는 상자를 꺼내오면서 난 '백년 묵은 궁금증'을 찾게 되었다. 그 상자 안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써온 일기장, 편지, 작은 선물 등이 있었다. 상자를 하나하나 보다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쓴 글이라지만 너무 재밌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을 한 권 한 권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언제부터 山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를 드디어 발견 했다. 일기장에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97년 5월 24일 토요일
일어난 시각 7시, 잠자는 시각 10시 30분
제목: 아빠의 편지
아빠께서 내가 자고 있는 동안 편지를 쓰셔서 내 책상위에 놓아 주셨다. 지난번 아빠와 등산 갔을 때 참 재미 있으셨다고 쓰셨고 늘 참고 인내 하면서 건강하고 신바람 나는 씩씩한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쓰셨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아빠는 언제나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엄마는 항상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엄마 아빠 말씀을 명심해야겠다. "아빠 편지 고맙습니다."

나는 부녀(父女)산행을 즐긴다_1
지금도 부녀 산행을 즐기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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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녀(父女)산행을 즐긴다_2
궁금증을 해결해준 일기장

글을 읽은 순간. 아빠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갔을 때가 머릿속 에서 되살아났다. 분명 97년 전에도 산을 갔지만, 유난히 그 때 간 산행이 즐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산 이름은 '관악산'
아빠가 그 때 준 편지를 찾고자 했으나, 많고 많은 편지 중(아빠의 취미: 붓글씨 손 편지 )
유독 97년 편지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기장 하나의 발견만으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 날은, 나의 과거 거슬러 올라가기에 박차를 가했다. 내 앨범을 구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또 하나 발견한 사실은 가족휴가의 대부분이 바다가 아닌 산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빠의견 40% 내 의견 50% 나머지 동생+엄마 합쳐 10% 반영이 된 탓이다. 산의 매력을 모르는 동생과 엄마는, 아빠와 나를 위해 희생하셨던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좋으면 그저 다 좋다고 한 말이 사진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한 날이지만, 동시에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든 날이기도 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었으니 내 생각이 아닌 부모님 생각을 하게 된 것인가. 이번 휴가는 산이 아닌 바다로 가자고 하면 엄마는 놀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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