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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
2013-06-07 06:53:04최종 업데이트 : 2013-06-07 06:53:04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회사에서 산행을 하는데 등산한지가 너무 오래된지라 등산화가 보이질않아 새로 구입했다. 
그런데 나의 새 등산화를 본 남편이 자기 등산화는 너무 낡았다며 부러워하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로 남편의 등산화를 비싼 고어텍스로 사다줬는데, 늘 바쁘게 사는 남편인지라 신을 기회가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 

새 등산화를, 신발장이 아닌 현관입구 거실 한쪽에 얌전히 모셔놓고, 남편은 그걸신고 산 대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것이 아닌가. 
내년이면 오십인 그런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곱게 모셔만 놨던 등산화를 드디어 신을 기회가 왔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신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산은 관악산. 여러갈래의 코스중, 과천 종합청사에서 연주암, 연주대 쪽으로 올라가서 서울대학교 방면으로 내려오는길을 선택했다. 일요일도 항상 아침 일찍 교회 가느라 늦잠을 자지 못하는 우리 가족 들인지라 현충일 아침, 모두들 느긋하게 꿀잠을 잔다. 

돌아다니기 좋아 하는만큼 싸들고 다니는것도 좋아하는 나는 식구들이 모두 자고있는 아침일찍 일어나서 김밥에 김치부침개, 가래떡과 쑥떡 냉커피에 얼음물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식구들을 깨우는데 시간은 벌써 10시다. 아침먹고 씻고 준비하니 열한시. 한참 햇볕이 뜨거울 시간이 돼버렸다.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1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1
 
함께 가기로 했던 대학생 큰딸은 마음이 바뀌어서 안가겠다고 한다. 속으로는 잘됐다 싶으면서도 내색은 하지 못하고 아쉬운척하며 남편과 둘만의 산행을 나선다. 
가볍게 갔던 광교산, 칠보산과는 또 다른 설렘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라도 운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 전철을 타고 가자 했더니 남편은 차를 가지고 가잔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입구에 주차를 하고 검색한대로 11번 출구에서부터 등산객들을 따라 길을 걷는다. 집을 떠나 어딘가로 나서는 발걸음은 항상 설레고 흥분된다. 늘 보던 일상이고 풍경이지만 새삼 새롭고 예뻐 보인다. 등산로 입구에, 등산 시작전 준비운동을 하라는 안내 표지판이 그림과 함께 있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림을 보면서 열심히 따라해본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수 많은 사람들중 안내 표지판 앞에서 준비 운동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다들 준비 운동은 집에서 하고 나오셨는지, 아니면 나 같은 초보산악인들만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고 드디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 한편으로 계곡물이 너무도 맑고 깨끗하게 찰랑이고, 매끈한 바위들이 펼쳐져있어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가족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때는 이런곳에서 놀았는데 생각하니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2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2
 
우리가 너무 게으름을 피우고 늦게 출발 했나보다. 벌써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길을 비켜주느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자꾸만 흐름이 끊긴다. 
남편과 함께하는 산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마음이 꽉 찬듯 넉넉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라 나란히 걷는게 아님에도 든든하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걷다보니 조금도 힘들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중간 중간 그림 좋은곳에서는 사진도 열심히 찍으면서 드디어 도착한 연주대. 깎아지른듯한 돌 기둥위에 서 있는 연주대는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는듯 황홀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넓게 펼쳐진 바위위에 관악산이라 새겨진 또 다른 바위가 서 있다. 인증샷을 찍으려는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우리도 관악산 정상 등반 인증샷을 찍고 또 사람들을 따라 바위를 기어올라 꼭대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본다. 정상인증샷도 찍었겠다, 3시간여에 걸쳐 드디어 도착한 바위에서 이제야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래도 관악산이라 새겨진 바위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바위가 아닌것 같다. 

남편과 바위에 관해 한참 토론을 하다 우리 맘대로 가져다 놓은 바위로 결론을 내리고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과천쪽으로 내려가는데 남편과 나는 서울대쪽으로 내려오는길을 택했다.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3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3
 
그런데 올라가던길과는 전혀 다른 산세다. 
시작부터 밧줄을 타야 내려올수 있는 바위산이 나를 긴장시킨다. 하지만 나름 체력에 자신있는 나는 남편이 걱정인데 남편은 내 걱정을 한다. 서로를 걱정하며 바위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이제야 제대로 산을 타는것 같은 스릴이 느껴진다. 

남편은 군대에서 유격훈련 하던 생각이 난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려가는 길은 험한 바위산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내려오면서 만난 몇사람을 잠깐 쉬느라 놓쳐버린 우리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제대로 가는걸까 불안해하며 열심히 바위산을 타고 길을 찾아가며 내려온다. 산 아래 동네에서는 이미 시들어 버린 라일락이 산위에서는 아직도 진한 향기를 풍기며 외로운 우리 부부를 달래준다. 

눈앞에 바로 보였던 서울대 건물이 돌아서면 사라지고 안보이길 반복한다. 무조건 길인듯 싶은곳으로만 내려오니 드디어 서울대학교가 보인다. 
다섯시간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니 발바닥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서울대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전철을 환승해서 차를 주차해둔 과천으로 돌아오니 이곳이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4
남편과 함께 한 관악산행_4
 
잠깐 쉬어가자며 들어간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피곤을 달랜다. 

남편과 부부로 산 세월이 벌써 22년째. 살다보면 이런생각 저런생각 들때도 많고, 미웠다 고왔다 하지만 세월만큼 쌓이는 부부의 정이라는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듬직한 믿음과 언제나 내편이라는 확신, 그런것들 같다. 
관악산의 푸른 숲과 맑은 물과 싱그러운 꽃들의 향기와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한 오늘의 산행은 내 삶에 소중한 한 페이지를 또 기록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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