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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의 종결자' 때문에 웃은 날
2012-07-26 02:22:34최종 업데이트 : 2012-07-26 02:22:34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양
날도 너무 덥고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짜증나는, 무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자꾸만 치솟는 하루다.
머리 좀 시켜 보고자 아주 짧은 에피소드 한가지 전해 보고 싶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가던 길에 바로 옆 사무실 다른 팀을 우연히 만났다. 우리 3명 그쪽 4명. 기왕이면 같이 가자고 의기 투합해 근처 가까운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주욱 둘러 앉았는데 우리팀 직원 한명이 "뭘로 주문할까요? 참고로 이집 전주 비빔밥 죽여주게 맛있거든요. 값도 싸고"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살려 적극 강추했다.
더군다나 그 직원은 입맛 까다롭기로 사내에 소문이 자자한 친구였는데 그의 입을 통해 검증이 됐다 하니 좌중의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모두 다 "OK"사인을 냈다.

 
'귀차니즘의 종결자' 때문에 웃은 날_1
'귀차니즘의 종결자' 때문에 웃은 날_1

"아줌마, 여기요!"라며 주문을 외치려 하는 순간....
묵묵히 앉아 있던 옆 사무실 직원이 '스톱'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육개장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하므로 응당 그에게는 육개장으로 바꿔주었다. 음식 주문을 받은 써빙 아줌마의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이 눈에 읽혔다. 음식을 다 똑같이 하지 않으면 시간도 더 걸리고 번거롭다는 이유에서...

그런거 모르지 않지만 식당 사정 봐가면서 입맛을 통일시킬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하여튼 그대로 갔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맛 있다는, 이미 대장금(?)의 입맛에 의해 검증까지 거친 그 맛있는 전주 비빔밥을 마다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박 과장... 박과장이라 했나? 왜, 비빔밥 싫어하나 보네?"
내가 짐짓 물었다.
"네...후후... 그게 말이죠...참..."

그가 말문을 더듬더니 어렵사리 꺼낸 답은 우리 모두를 뒤집어지게 했다.
"비빔밥은요... 비비기가 너무 귀찮아요. 그래서"
헉. 비비기가 귀찮아서라 한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비빔밥은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단다. 비비기 귀찮아서? 
다들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귀차니즘의 표본격이었다. 

비빔밥과 그 직원 덕분에 한바탕 웃고 난 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문득 내 어릴적 누님 생각이 났다. 
그 옛날 시골에서 어렵게 살 때, 누님은 동생들의 밥을 곧잘 비벼주었다. 가지나물, 호박나물, 열무 김치 등을 넣은 다음 고추장을 듬뿍 넣어 보리밥을 썩썩 비빈다. 당시 엄마와 아버지는 농삿일에 바빠 늘 논밭에 나가 계셨으므로 집안 부엌살림은 완전 누님 차지였다.

우리 형제들은 소반에 둘러앉아 누님이 비벼주는 밥을 먹으면서 '꿀맛'이라고 했다. 궁핍했던 시절에는 무슨 음식이든 다 꿀맛이었지만 누님의 비빔밥이 유난히 꿀맛이었던 그 비결을 난 아직도 모른다. 
형이나 내가 밥을 비벼 놓으면 그런 맛이 나지 않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큰 양푼에 밥을 사발째 부어 놓고 누님의 손을 기다리곤 했다. 

"밥 다 식겠다. 어서들 비비지 않고 왜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어?"
누님은 동생들의 의중을 다 알면서도 짐짓 한 마디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이구동성으로 "누이가 비벼야 맛이 있거든!" 했다. 
그저 멋 내느라 두꺼운 썬라스 끼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여자들과 달리 우리 누님은 나이 드신 지금도 늘 동생들을 챙기는 소박한 한국 여자다.  그저 열무김치 넣고 밥 잘 비벼주던 순박한 우리 누님의 손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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