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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전제품에 대한 단상
2012-07-20 19:24:22최종 업데이트 : 2012-07-20 19:24:22 작성자 : 시민기자   유시홍

지난 어버이날 아침에 특공연대소대장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맙습니다. 잘 길러주셔서' 하면서 하는 말이 '뭐 필요 하신 거 있으세요.' 순간 며칠 전부터 느닷없이 말썽을 부리는 세탁기가 생각이 나서.'세탁기나 하나 사주라'하고 농담을 하였더니 선뜻 알았다고 하기에 계좌번호를 적어 보냈다. 다음 날 아들은 통장에 거금을 보내왔다. 지금은 보기 힘든 전자회사 로고가 찍힌 오래된 세탁기를 바꾸면서 오래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1960년 후반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인가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니 신기한 전자제품이 안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19인치 진공관 텔레비전이였다.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안테나가 세워진 날이다. 
그날 이후 저녁때만 되면 우리 집 앞마당은 작은 영화관이 되었다. 텔레비전을 구경하기 위하여, 연속극을 시청하기 위하여 동네어르신들을 비롯하여 코흘리개 어린이들까지 멍석을 깔고 모여 않아 텔레비전을 시청하였다. 덕분에 안방에 있던 텔레비전은 마루로 나와 장식장에 들어가 주먹만한 자물쇠를 달고 살아야만 하였다. 

진공관이 빨갛게 달궈진 다음에야 화면이 들어오고 꺼진 후에도 잔영이 남아있던, 브라운관 가운데서부터 부풀어 오르며 화면이 나타났다간 가운데로 쏙 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였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흘러 텔레비전 양 옆을 때려야만 화면이 들어오더니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와 보니 자취를 감췄다. 
당시 에 즐겨 보던 연속극 여로, 아씨, 실화극장, 타잔 등이 생각나며 황금박쥐, 마린보이, 아톰, 요괴인간과 같은 만화 영화들을 즐겁게 시청하던 기억이 난다. 

오래된 가전제품에 대한 단상 _1
오래된 가전제품에 대한 단상 _1

당시 우리 집에는 외삼촌께서 동거하고 계셨다. 일정시간이 되면 텔레비전을 꺼야하는데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동네사람들로 인하여 삼촌께서는 나를 시켜 텔레비전을 끄게 하고는 하였다. 그때 소리치던 말씀 "00아 텔레비전 꺼라~", 차마 못 끄고 있노라면 이내 "00아 안꺼~""테레비 안꺼~" 하며 나에게 소리치곤 하였다. 
이후 나에게 붙은 별명이 안꺼..안꺼 하다가 '앙꼬'가 되었다. 오십 중반이 넘은 지금도 당시의 친구들 중 아직도 나를 앙꼬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다.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엔  커다란 스피커와 전축이 생겼다. 외삼촌께서 약주 한잔하고 퇴근하는 날이면 손에 LP판 한 장씩을 사들고 들어와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듣고는 하셨다. 덕분에 내 나이 십대에 부베의 연인, 베사메무쵸, 빠리는 안개에 젖어 이런 경음악을 듣고 지냈으며, 당시 들었던 음악 중에 나름 신나던 음악이었던 '샌프란시스코에선 머리에 꽃을 꼿으세요'라는 곡은 십년 째 지금도  내 핸드폰속의 유일한 컬러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헌인릉에 소풍가서 야전 틀어 놓고 헤이투나잇, 모리나, 뷰티플썬데이, 프라우드메리에 맞춰 개다리, 트위스트, 고고춤 추던 시절이 있었다. 밤 늦은 시간 방송국에 보낼 엽서를 꾸미며 신청곡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불속에서 듣던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추억으로 난 지금도 트랜지스터로 FM방송을 듣고 있다. 
이후 한때 음악에 심취하여 디스크자키가 되고 싶어 군에서 제대 후 명동의 꽃 다방, 동대문 상록수다방, 을지로 예전다실, 화양리, 천호동 등 음악다방을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추억의 LP판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결혼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제일 먼저하는 말이 "와 골드00다~" 모르는 사람들이 오면 "00전자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아직도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29인치 텔레비전과 주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육각수 만들어 주는 냉장고를 보면서하는 말이다. 

디지털방송이 송출되는 내년에도 난 지금의 텔레비전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이 상태라면 아마 미래의 나의 손주들도 골드스타 제품을 구경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아련한 추억과 함께 하늘나라에 계신 외삼촌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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