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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물 들이던 날
2012-07-25 12:31:08최종 업데이트 : 2012-07-25 12:31:08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고부간의 정을 알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운명을 달리하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로 삼 여년  지냈지만 함께 지낸 시간은 기껏해봐야 조상님의 제사나 명절  며칠 뿐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무엇을 좋아하였는지 당신의 아픈 곳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온 천지가 시퍼렇게 신록으로 덮이고 야생화가 지천에 피고 질 때면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당신네 시대에는 일곱 여덟 넘는 자식
을 줄줄이 낳아 딸 아들 살아가는 모습 보는게 낙인데 달랑 아들 둘만 낳아 아기자기한 재미 한번 느끼지 못한것 같다. 생전에 여식에 대해 무던히도 미련이 많이 가지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두 아들을 출가시키고도 애교 없는 며느리에 잔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터이다.

꽃을 참 좋아했던 시어머니는 옆
마당 울타리 앞에 장미를 심었었다. 꽃송이가 크고 탐스러운 노란 장미, 종이를 말아 만든것 같은 흑적색의 장미 그리고 마당 입구에는 접시꽃이 있었는데 접시꽃의 크기가 어른 손바닥보다 더 컸었다. 아마 거름자리가 옆에 있어서 튼실하게 자란것이 아닌가 한다.  

비오는 날이면  쪽마루에 앉아서 꽃 구경하기를 즐겨하셨단다. 
 노란장미는 마을 아래 있는 초등학교 박씨한테 얻어왔는데 그니가 키운  보다 당신이 키운 장미가 색깔도 선명하고 예쁘다고  일일이 설명해 준적이 있었다. 
하지만
 접시꽃대 사이로 닭들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알도 낳고 비비적거리다가 꽃대가 꺾어지고 쓰러지는 일이 생겨서 아주 성가시게 생각했었다. 

시골에야 지천으로 널린
것이 꽃이고 나무인데 유별나게 꽃밭을 만들고 돌보는 것을 보고  시골에서 유년을 보낸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봉숭아 꽃을 한웅큼 얻어오셨다.  시어머니는 백반과 꽃잎을 작은 절구에 넣고 곱게 찧었다. 나는 비닐봉투를 가위로 규격에 맞추어 보기 좋게  잘랐다.  질척하게 잘 찧어진 봉숭아를 시어머니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로 칭칭감아 묶었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시어머니의 손톱 끝은 갈리고 두꺼웠다.  새끼 손가락과 서너개만  할 줄 알았던 시어머니는 열 개의 손가락에 다 올리고 흐뭇해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봉숭아물 들이던 날 _1
봉숭아물 들이던 날 _1

휴일 식구들이 다 있는 오전부터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 분주했다. 반 없이 봉숭아꽃을 커터기에 갈고 미리 준비 해 두었던 비닐을 가지고 거실로 오니 작은아이가 무엇인가 싶어 가까이 왔다. 
손톱에 찧은 봉숭아를 올리고 비닐을 주면서
"이것 좀 묶어줘" 하니 얼굴을 찌푸리면서 장난스럽게 "아기 응가 같아요"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이 비닐을 묶는 손이 맘에 차지 않아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맘에 안들면 엄마가 직접하세요"한다. 
기분이 급
작스럽게 나빠졌다. '딸이 있었으면 작은 손으로 예쁘게 해 줄텐데'.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잔소리를 하고 또 안하겠다고 할 때는 달래서 다섯 개의 손톱은 내가 찧은 봉숭아를 올리면서 작은 아이가 다 묶었다. 작은 아이는 남은 다른 한 손을 들여다 보고만 있다. 

"이거 손톱에 올려야지"하자 "이거 제가 만져요? 손에 물들텐데."한다.  그러더니 "아빠" 하고 부른다.  거실로 나온 남편에게 작은아이는 " 아빠. 아빠가 손톱에 봉숭아를 올리세요. 저는 비닐을
묶을 게요"한다. 봉숭아 물들이기 작전에 가세한 남편은  좋은 생각이라도 난듯 주방으로 가더니 나무 젓가락을 가져왔다.  남편은 나무젓가락을  이용하여 손톱 위에 봉숭아를 올린다. '아. 정말 너무 한거냐?"하자 "그럼 말던가."한다.  
누구든  뒤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메니큐어를 사서 바르면 고생 안해도 된다는 둥 작은 아이와 남편은 궁시렁거렸고 참지 못한 나는 "그럴거면 냅둬"하고 뿌리쳤다. 그래도 세 개 남은 손톱은 어찌해야 하는데 인정머리 없이 돌아 앉아 키득대는 두 남자를 보니 확 화가 치밀었다. 
다시 돌아
와 해 준다고 말을 했을 때 뿌리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접어야 했다. 

작년만 같았어도 콧대 빵빵 높이고 남은 손톱 세 개 정도는 걱정도 안할 텐데.  아들이 둘이면 그 중에 한 명은  딸 같은 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딸 같은 아들이 작은 아이지만 손재주는 큰아이가 탁월하게 좋아서 여자들이 하는 것도  큰아이는 척척해냈다. 
지난 해년마다  큰아이가 손톱에 봉숭아를 올리고 손가락 열개와 엄지 발톱까지 묶어 주었었다.  지금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

시어머니가 여식에 대한 미련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업둥이를 데려왔던 것을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두 아들의 성화로 결국 함께 살지 못했지만 ... 

아직도
지인들과 딸 가진 친구들이 늦둥이를 권유한다. 매번 나의 대답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나이에" 라고 했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 딸이라는 보장만 된다면 "이라고 얘기한 때도 있었지만  모두 지나간 얘기다.  
그러나 오늘은  오붓하게 마주 앉아 손톱에 봉숭아물도 들이고, 큰 오빠 같이 다정한 남자 만나 재미나게
살아라 이런 소소한 얘기를 하면서 모녀의 정을 느끼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삼척에 있는 친정 엄마를 뵙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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