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우리 먼저 먹자, 아빠는 남는 것 드리고...
2012-07-24 01:09:00최종 업데이트 : 2012-07-24 01:09:00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우리 먼저 먹자, 아빠는 남는 것 드리고..._1
우리 먼저 먹자, 아빠는 남는 것 드리고..._1

"엄마, 밥 먹자"
"아빠 씻고 계시잖아"
퇴근후 저녁 식사전 샤워를 막 마쳤을 즈음 아이들과 제 엄마가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내가 아직 샤워중인걸로 아는듯 했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맹랑(?)하다.

"그냥 먼저 먹자. 아빠는 이따가 남는거 드시라고 하면 되잖아"
"그럴까?"
 남는 거? 남는 거를 먹으라구?

저녁밥을 제 애비를 기다렸다가 먹자고 해야할 놈들이, 제녀석들 먼저 먹은 후 남는거 주라구?거기다가 아내도 동조하듯 '그럴까?'라고 했다.
이것들이 정말!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 '분노'를 가라 앉히고 "에헴" 헛기침을 하면서 주방으로 가니 이내 밥상이 차려진다. 몇숟갈 뜨는둥 마는 둥... 심기가 몹시 불편하여 밥맛이 없다. 아내가 왜 그렇게 먹냐고 물었지만 잠시전의 상황을 '리바이벌'설명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는다. 참 내...

어릴적부터 끼니때만 되면 밥상머리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았다. 식구가 많아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달려가곤 했다. 무릎이 맞닿아 엉덩이를 뒤틀면서 자리를 얻어내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버지의 눈길을 잘 받을 수 있고 맛있는 반찬 하나라도 더 받아 먹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 경쟁이 치열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넓고 큰 자리는 항상 비워져 있었다.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자리였다. 아버지가 계시건 계시지 않건 간에 아버지의 자리는 항상 확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회의 가장 첫 번째 기초단위라고 하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할 일이 많은 것인지를 요즈음의 현실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한 지인이 "옛날부터 아버지의 자리는 나랏님과 스승과 동격의 자리로 일컬어질 만큼 권위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넋두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게 요즘의 아버지들의 현실이며 애환이라면 애환인듯 하다.

가부장의 권위가 쇠퇴하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왜소해지는 추세이다. 경제권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주부가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에서 급여가 곧 바로 온라인을 통해 입금되어 부인이 관리한다.
가정에서도 돈 주머니 찬 사람의 입김(?)이 센 것도 사실이다. 자녀들이 아버지보다 엄마에게 돈 달라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 보다 엄마의 비중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농경시대에는 아버지의 권능이 위력을 발휘했다. 의사결정권도 아버지가 대부분 행사했다.
남자 남(男)자는 밭 전(田)자 밑에 힘력(力)자가 결합된 글자이다. 남성의 노동력이 중시되고 위력을 발휘하며 조선조시대까지 이어오던 유교이념의 가치체계에서는 제도적으로 남성 우위의 사회였다. 남성의 권위가 세상을 지배하며 가부장적인 귄위가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사회가 서구문명의 도입과 더불어 민주화 되고 양성 평등이 강조되며 핵가족 시대가 되다 보니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담벼락 아래 버려져 비를 맞는 고철덩어리로 변했다. 

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 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시다. 

가족에게 제 가진 모든 것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 주고 마침내는 빈껍데기가 되는 아버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다 비슷할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만 이건 좀 너무 서글프다. 
우리 수원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아빠(여보)! 힘드셨죠?! 제가  어깨 주물러 드릴께요!"하는 애정과 아빠의 권위를 세워주는 가정이었으면 좋겠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