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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공부 후 글씨 읽고 물건 산 할머니
2012-07-24 08:24:05최종 업데이트 : 2012-07-24 08:24:05 작성자 : 시민기자   강석훈
버스안에서 할머니가 열심히 독서 하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돗수가 높아 보이는 돋보기를 쓰고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지신 6순 후반쯤의 할머니. 훌끗 쳐다보니 할머니가 탐독하시는 책은 다름 아닌 한글교본이었다.
아....... 그러셨구나. 어릴적 가난이든 혹은 학교가 가까이 없어서든, 아니면 어떤 난감한 가정사 덕분에 배우지 못한 한을 늦게나마 풀고 싶으셔서 한글을 깨우치고자 나선 할머니가 존경스러웠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버스 안에서 저렇게 한글 책을 탁 펴놓고 공부하시는게 쉽지가 않을텐데... 그 용기가 참 대단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늦었지만 배우고픈 향학열에 책을 끼고 외출하시며 틈틈이 공부하는 할머니의 잔상이 두고두고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시민기자 나름대로도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젊은 대학생때 경상도 모 지역에서 야학을 조금 했었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중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했던 8개월 정도 기간에 야학반의 노인분들 한글교실에서였는데 그때는 참 소박했다.

요즘이야 야학 같은게 거의 없을것 같은데 그때는 지방 곳곳에 야학이 있었다. 뜻있는 사람들이 야학을 만들어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한글도 가르쳐드렸으니까.
서툴지만 오히려 꾸미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글,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글이라 용기를 내 세상에 보이고 싶은 노년(老年)의 소박한 글, 한 평생을 글씨에 대해서만큼은 시각장애인처럼 답답하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세상 살맛이 난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넘쳐 나는 야학 한글교실반.

한글공부 후 글씨 읽고 물건 산 할머니_1
한글공부 후 글씨 읽고 물건 산 할머니_1

야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 초급반 교실에서 한 할머니(학생)의 신이 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조금 전 신명을 내던 어르신께서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상님, 제 말 좀 들어 보이소. 제가요. 전에는 수퍼나 마트에 가서 국시(마른국수) 살라카믄 굵기, 색깔만 보고 사 왔는데 요즘은 글자를 딱 본다 아입니까. 옛날국시, 고향국시, 메밀국시, 중면, 소면, 세면, 이렇게 글자를 딱 보고 사가 온다 아입니까." 
"하하하하...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마음은 참으로 뿌듯했다. 물론 그 할머니가 한글을 깨우친건 내 노력 덕분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셨던 결과이지만, 할머니 학생들이 그런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것 만으로도 큰 보람이었다.

수업에 참가하는 1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글을 배우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 의지하며 만학의 친구들이 있는 한글교실에 나오면서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순간부터 세상이 재미있게 변했다는 노인분들.
또한 뒤늦게나마 답답한 세상을 뒤로 한채 오랜 세월 간직해 오기만 했던 꿈을 아주 조금씩 이뤄가는 순수한 열정에 스스로 기뻐하고 계셨다. 

한 글자 한 글자 깨우쳐 가는 과정을 보면서 가르치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글자를 읽으면서 기뻐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인지를 반문하게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가고, 제대후 복학해 졸업하고... 나의 인생살이도 그 할머니들이 보여준 열정이 두고두고 큰 교훈이 되었다. 
내 삶까지 뒤돌아 보게 한 할머니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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