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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
2012-07-24 11:09:38최종 업데이트 : 2012-07-24 11:09:3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나와함께 21년째 사는 남자, 그는 본명 외에 특별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일명 '세븐-일레븐'이라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년365일 아침 7시 이전에 회사로 출근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밤11시, 그의 하루 패턴은 거의 이렇게 끝난다.

그런 그도 1년 중 딱 한번, 여름 이맘쯤이면 시어머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휴가를 떠난다. 올해 특별한 점은 매년 1박2일만 쉬던 여름휴가를 웬일인지 4일씩이나 휴가를 냈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혹시..... 드라마의 단골메뉴인...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란 이상한 추측까지 하게 했다. 그러나 나의 불길한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단지 '쉼'이 필요했던 것.

일상이 회사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그도 휴식이 필요했으리라. 국내에 머물러도 외국에 나가도 늘 회사업무중이니 쉬면서 놀면서 즐기기란 힘들 터이다. 
한국인 남자들의 하루가 이와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나를 비롯해 그들의 버거움을 알아주는 이는 몇이나 될까. 세븐-일레븐으로 통하는 세일즈 맨 혹은 샐러리 맨들의 비애는 굳이 아서 밀러의 대표적인 희곡 '샐러리맨의 죽음'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충분이 알고도 남을 터다.

쉼이 필요했던 남편과 형제들은 지난 금요일 어머님을 모시고 댓잎향기 그윽한 담양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조선중기 선비의 기상을 묵묵히 보여주는 소쇄원과 푸르디 푸른 죽녹원 대나무들의 향연과 그리고 넉넉한 휴식처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始原) 가마골생태공원에서 서로의 기운을 복돋아 주며 휴가를 즐겼다. 

'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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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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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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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_4
'세븐-일레븐 남자', 휴가는 에너지 보충의 시간_4

1박2일 동안 자연이 주는 너그러움을 받아들였다. 물빛 가득 끌어올린 자연 속 울림(鬱林)에서 맑은 바람을 들이마시고, 거스름 없이 흘러가는 계곡물의 흥겨움에 첨벙 뛰어들어 세족(洗足)하며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물가에서 나오지 못하고 물놀이에 옷이 잠기는 줄 모르며 반나절을 꼬박 보냈다.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오른 생태공원 내 출렁다리위에선 정신이 아찔하기도 했지만 용소(龍沼)의 물빛을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조선조 지체 높은 양반가의 별서처럼 아늑한 집에서 하루를 보낸 후 시어머님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숯불 오겹살로 저녁을 먹으며 이별을 준비할 즈음 어머님은 집안과 밖을 돌며 고향의 햇빛을 받은, 당신의 손으로 건져 올려 진 농산물들을 가득 꺼냈다. 
고마움에 포근히 안아드리곤 그것들을 싣고 수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머지 휴가 2일, 성큼 진화된 진동의자에 앉아 액션영화에 취하고 흥겨운 쇼핑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함께 한지도 언제였는지 가물가물...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가 '나대로'의 생활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남편은 피로가 쌓였는지 틈만 나면 잠을 청했다. 시어머님과 함께 하는 휴가지에서는 마냥 참는 듯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잠에 굴복하고 말았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는지 꾸역꾸역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애써 참았지만 이내 골아 떨어지기 일쑤였다. 오죽피곤하면 그 시끄러운 극장 안에서도 잠들고 말았을까 싶다. 

최첨단 시설인 흔들리는 의자에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웅장한 사운드는 극장 안을 통째로 날려버릴 기세이것만 안하무인 남편은 잠만 쿨쿨 잘도 잤다. 나중에 '왜 안 깨웠냐'고 할까봐 옆에서 이내 흔들어 깨워도 소용없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야 잠에서 깨어난 남편은 나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어휴!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처음 본다"고.

조그만 시골동네 선동마을에서 효자로 알려진 4형제는 일 년에 한 번씩 어머님의 세간을 바꿔드린다. 작년엔 냉장고를, 올해는 3D-TV를 사서 놔드렸다. 
조그마한 선물을 해드려도 마냥 고마워하는 시어머님은 우리들이 이제나저제나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밭에서 소출된 갖가지 농산물과 여타의 맛있는 음식들을 장만해 놓으신다. 올 여름도 작년과 진배없이 엄청난 양을 싸 주셨다. 

빠짐없이 모두 승용차에 실었는지 확인하지만 출발한지 10분이 안되어 여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에구, 에미야~ 너가 좋아하는 양파 절임 빠졌다"며 돌아오란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남편의 성화에 그냥 집으로 오고 말았다. 어머님의 성의를 생각하면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 미안할 뿐이다. 
남편이 '피곤하다'는 말에 어찌하지 못하고 말았다. 면허만 있지 운전을 하지 못하는 장롱면허의 비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어머님과 함께 보낸 휴가지에서 힘을 얻었는지 오늘아침 기분 좋은 덕담을 하며 회사로 출발했다. "한 달은 쉰 것 같이 몸에 기운이 돈다"면서. 

세븐-일레븐으로 통하는 사람들, 그들은 오늘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행복을 위해 일터로 향한다.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간다. 그들은 분명 남이 아니라 우리들 가족임을 잊지 말자. 그들이 흘리는 오늘의 땀방울이 내일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남편이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외친다. "아자 아자,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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