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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똥차를 따라다니던 추억
2012-07-24 12:48:25최종 업데이트 : 2012-07-24 12:48:25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푹푹 찌는 무더위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돼 내려 갔던 지난 주말, 마침 시골집 대문 앞에 웬 트럭이 멈춰서 있다. 그리고 차를 집앞에 주차시키기 한참 전 멀리서부터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그건 정화조차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였다. 일명 똥차....
"시골 노인네 두분 사시는데 웬 똥이 이렇게 빨리 차요?"
아들의 너스레에 어머니가 그저 풀썩 웃으신다.

아르바이트, 똥차를 따라다니던 추억 _1
아르바이트, 똥차를 따라다니던 추억 _1

그런데 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똥차'가 반갑다. 마치 오래전의 친구를 만난듯.
똥차가 반가운 이유가 있다. 가난하게 살던 고학생 시절, 도시에 나가 어렵사리 공부를 하던 때 막노동, 똥차 시다바리, 신문배달에 웨이터까지 안해본게 없다. 그중에 아르바이트로 똥차를 따라다니던 추억이 아련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똥차를 따라다녔던 사실을 모르신다. 지금까지도. 당신이 가난해서 아들이 그런것까지 했다고 생각하시면 눈물을 흘리실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긴, 그때 다른 친구들도 별거별거 다 했다. 수영 잘하는 친구들이 바닷가에 나가 안전요원 같은 하는 경우는 고급중에 고급이었고, 우리같이 별 능력없는 친구들은 이런 일이나, 석공집 돌짐 지는 일, 모래 골재채취장 같은데서 그야말로 몸으로 때워야만 했다.

대학교나 고층 빌딩처럼 몇십톤 분량의 정화조가 있는 곳은 3군데 정도만 돌면 하루 일정이 끝난다. 그러나 가정집은 다르다. 1t부터 3t까지 정화조 용량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화조 차를 몰고 많게는 하루에 20군데를 넘게 돈다. 그때만해도 산동네가 많은 곳의 가정집의 분뇨를 처리하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분뇨처리차에서 정화조까지 잇는 호스는 무게가 1m에 10㎏ 정도 나간다. 산동네 가정집은 보통 100m에서 150m 이상 호스를 끌고 올라간다. 1t 이상 되는 호스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다. 이게 정말 보통 노역이 아니다. 

거기다가 이 정화조라는게 메탄가스가 가득해서 위험하기 때문에 외국은 안전요원이 미리 가스 노출 여부 등 안전상황을 점검한 뒤 작업요원을 투입한다던데 우리는 그런 것도 없었다. 일단 정화조 뚜껑을 열고 본다. 정화조 뚜껑을 열 때 나오는 가스? 이거 색깔이 노랗다. 정말로 노란색이 보인다. 메탄과 암모니아가 섞인 가스는 '어으윽...' 정말이지 폐를 찌른다. 방독면? 그건 꿈에서나 보는 물건이다.

가스만 나오는 게 아니다. 모기는 양반이다.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입, 코, 눈 마음껏 공격하는데 그걸 참아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호스 꽂아 놓고 그냥 기다리면 되는걸로 알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똥은 딱딱해지면서 굳는다. 딱딱하게 굳은 똥은 정화조 위를 시멘트처럼 덮고 있기 때문에 쇠꼬챙이로 돌덩이 같은 똥을 계속 깨면서 호스를 휘저어 주어야 한다. 그 똥이 깨질 때마나 나는 냄새....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방학 두달간 그렇데 번 피같은 돈으로 학비에 보태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개강후 친구들이 방학기간 동안 어디서 뭐했냐고 물으면 시골집에서 소 돼지 키우면서 있었다고 둘러대곤 했다. 넉넉한 친구들은 여행도 다니고 방학을 즐겼지만 나는 그럴 처지가 못되었다.

지금도 산동네에는 정화조 차가 다닌다. 그분들 참 어려운 가운데 일하시는 분들이다. 임금이나 이런건 예전보다 나아지셨는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시는 분들 많다. 그런분들 노고 덕분에 편히 살고 있다는걸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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