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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펜 글씨 교본이 필요한 건 아닌지?
2012-07-21 13:26:06최종 업데이트 : 2012-07-21 13:26:06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최근 몇년전까지만 해도 중고생들 사이에 '깜지'라는게 있었다. 일명 빽빽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깜지란 무엇인고 하니 흰 종이에 글씨를 빽빽이 써넣어 흰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글을 쓰는 것이다.
학교나 학원의 교사들이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정해진 성적 기준에 미달하면 체벌을 대체하여 내리는 벌의 한 종류이다. 

이 밖에도 깜지는 벌 뿐 아니라, 시험 기간과 같이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학생들에게 교육을 목적으로 깜지를 쓰게 하거나 스스로 쓰기도 한다. 깜지와 빽빽이라는 것의 이름 또한 깜지는 흰 종이에 글을 잔뜩 써넣어 마치 검은 종이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빽빽이는 흰 종이에 글을 빽빽이 써야 한다는 뜻에서 온 말인듯 하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깜지라는걸 쓰는걸 보면 괜스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그걸 쓰느라 낑낑대는걸 보면 저렇게 해서라도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면 좋겠거니 하는 은근한 기대도 갖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깜지를 쓰다 보면 빨리 종이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에 이게 사람의 손으로 쓴 글씨인지 발로 쓴 글씨인지 참으로 알수 없게 대충 휘갈겨 쓰게 된다는 것이다. 혹시나 그런 방식이 아이들 글씨를 망치는 원인은 아닐런지 하는 우려감도 든다.

아이들이 꽤나 정성들여 썼다는 숙제나 독후감, 반성문 같은것도 사정이 다를 거 없다. 글씨체가 너무 조악해서 봐줄 수가 없다. 
심지어 대학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글씨가 중학교 신입생만도 못한 게 수두룩하다며 혀를 찬다. 우리의 교육과정도 글씨 잘 쓰는 공부는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는듯 하여 거기에 대한 커리큘럼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이대로 방치하다 보면 글씨 잘 쓰는 사람 구경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는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육필이라는 말은 이제는 고어가 돼 간다는 느낌이 든다.  글을 '쓰는'게 아니라 '치는'일이 일상화 되다 보니 더더욱 그러하겠지만 한자 한자 정성들여 손글씨를 쓰며 백지의 여백을 빈틈없이 메우는 육필의 정겨움은 어디에서 찾을까.

정겨움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조금 잘 쓰는 글씨를 보고 싶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서 내가 맨 먼저 배운 '문학'은 선배들의 글씨체를 흉내 내는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한 선배는 간편한 모나미 볼펜 놔두고 굳이 만년필로 아주 예쁘고 멋진 글씨를 썼다. 함부로 흘려 쓰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모범생의 필체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선배 다운 품격이 묻어나는 글씨였다. 

그 당시 그 선배의 필체를 표절(?)한 덕분에 나는 지금도 글씨 하나만큼은 제법 정갈하게 쓸수 있게 됐다.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갈 때, 지금이야 인쇄소에서 봉투에 아예 賻儀(부의) 또는 結婚(결혼)이라고 팍팍 찍혀 나온걸로 간편하게 들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이 두자를 직접 봉투에 써 넣어야 했다.
그때 글씨가 '되는'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의 경조사 봉투를 써 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글씨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한석봉같은 명필가가 될수는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쓰지는 못해도 우리 말의 본 뜻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의 글씨체 정도는 깔끔하게 쓸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시민기자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70, 8O년대처럼 '펜글씨 교본' 같은 책을 다시 우리 학생들의 책꽂이에 꽂아줘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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