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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순사와 우리 아버지
모든 행실의 기본은 바른 호칭과 상대를 예우하는 말에서 시작
2012-07-21 09:49:04최종 업데이트 : 2012-07-21 09:49:04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아침엔 네발로 걷다가 점심땐 두발로 걷다가 저녁땐 세발로 걷는 동물은? 당연히 사람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지날려면 그 앞을 지키는 스핑크스를 거쳐가야 하는데 스핑크 스 앞을 지날때 내는 수수께끼이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육체적으로 이런 변화가 있듯, 태어나 성장한 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족간에서 시작된 호칭이 사회적으로 또 여러 가지로 불려지는게 우리 사람들이다.

특히나 가족간 촌수와 항렬을 무지 중시하는 우리의 혈연적 가족관계의 특성과, 사회적으로도 선후배 혹은 위아래 기수와 서열 엄청나게 따지는 풍토 덕분에도 더더욱 그렇다.
어릴적 태어나자마자 아기로 불리우다가 어엿한 이름을 갖게 되고 성장해가며 학생이라거나 군인으로, 아가씨로, 다시는 사회의 직장에서 그가 맡은 직책에 따라 주임, 대리, 과장, 부장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요즈음 TV의 연속극을 보면 어느 연속극일지라도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호칭이나 생활용어에서 약간 "이건 아닌데" 싶은 부분을 적잖게 발견하곤 한다. 
성장과정에서 아무리 편하게 살아온 인간관계였어도 일단 결혼 전과 후의 호칭은 달라져야 하는데 그런걸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시집온 며느리를 어렸을 때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부르면서 오히려 더 친근감을 주려고 그런다고 말하는 사람들. 아무리 나이가 적더라도 결혼으로 인해 상대가 자신보다 손위가 될 경우도 없지 않은데 그런 상황마저도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때로는 염려까지 된다.

시민기자가 어렸을 때 경험한 일이다.
당시 농촌에는 막걸리 순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경찰관이 농사짓는 사람들 천지인 시골 면 단위 파출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형님 아우라고도 부르면서 가끔 시골마을 순찰을 돌라 치면 농삿일 하던 농민들이 막걸리 마시다 말고 "어여 와서 한잔 하고 가"라며 친근감을 표시하다 보니 그런 호칭이 붙은 것이다.
그때는 마을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경찰관이 그 동네 어느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있을 정도의 시절이었다.

시민기자의 아버지께 자주 찾아오시던 말단 경찰관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의 작은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둘도 없는 동네 친구사이셨기에 그 경찰관은 아버지께 깎듯 한 존칭으로 예를 갖추셨다. 응당 아버지께서는 그 분을 마치 친동생인양 아주 편하고 친절하게 응대하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분이 또 오셨는데,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뜰아래로 황급하게 내려가시더니 더할 나위 없는 정도의 예를 갖춰 맞이하셨다. 그 분은 너무나 갑작스런 일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시고 어쩔 줄을 모르시며 극구 말씀 낮추시라고 애원에 가깝게 말씀하시며 자세를 낮추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정중하게 한 말씀 하셨다. "이제 경찰서장에 취임하셨으니 이 지역의 어른이신데 어찌 전과 같게 대할수 있으리요"라 하셨다. 

막걸리 순사와 우리 아버지_1
막걸리 순사와 우리 아버지_1

그런 광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끝내 사람이 어떤 직책에 오르면 나이 많은 어른들이라도 다 예우를 해드려야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즉 공과 사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우리 정서에서 가장 우선하는 건 주로 연령이라 본다. 
시민기자도 아들 딸들을 키우면서 항상 웃어른에 대한 깎듯한 예의는 물론이고, 친구와 선후배 들을 대할때도 반드시 그 위치에 맞는 격식을 따져 부르도록 가르키고 있다. 상대방을 그 위치에 맞게 불러주는 것이 상대방 예우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앞서 연속극을 예로 들었는데,  때로 결혼한 자기 아들딸들에게 이름으로 부르는 일도 다반사고 지나칠 정도로 하대를 한다거나 심지어 입에 못 담을 욕설까지 하는 경우더 적잖게 본다.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럴수는 있지만 내용 전개상 그렇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걸 보면서 왜 저럴까 싶어서 안타깝다. 

아들이라도 나이가 들면 이름보다는 '아비야.'로 호칭하는 게 우리 옛 법이다. 설령 자기 제자가 교단에 서고 있대도 자신이 아무리 교장일지라도 그 교사에게 함부로 이름을 부른다거나 하대를 하지 않는것처럼. 
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란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도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이미 남의 집 어엿한 아내가 된 사람에게 이성으로서 막말을 하는 출연자가 있어서 상당히 듣기에 거북했다. 이미 아들딸까지 장성한 여성이었는데.

그 반대로 어느 스승은 자신을 찾은 제자를 만나 장성한 그 제자에게 완전 반말을 하는게 아니라 말끝을 다소곳이 하며 조심을 다하는 모습은 너무나 훌륭했다.
 우리 서로가 아무리 친하다 해도 격한 말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자중하고 항상 언행을 바르게 갖자. 그게 행동의 바름을 가늠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며 인격존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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