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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
'SE係 페스티벌'에 앞선 아트 페스티벌
2012-07-20 10:05:21최종 업데이트 : 2012-07-20 10:05:2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꾸물꾸물한 회색 토트 무늬 하늘, 한껏 찌푸리고 있는 주변 공기...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나혜석 거리로 갔다.
역사 속 인물, 나혜석보다 많은 맛집과 카페 거리로 더 익숙한 나혜석 거리. 한 식당으로 자리를 정하려는데 동춘 서커스단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춘 서커스단?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무한도전 '나름 가수다' 특집편.
요즘 사람들에게는 박명수 꾸민 리쌍의 '광대' 무대에서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인 서커스단으로 더 익숙할 지 모르겠다. 그 무대에서는 피처링 김범수와 박명수 뒤에 가려져 뒷 배경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본 그들의 공연은 대단했다. 
누군가의 뒤에서 잠깐 '스르륵' 지나가기엔, 'one+one' 처럼 누군가의 무대에 끼워서기엔 뒤에서 흘렸을 그들의 땀방울과 눈물의 값어치가 애달팠다. 

공연시작 PM6:30.
시간이 가까워져도 무대를 철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도 오는데 공연하나? 관객이 없으면 맥 빠질텐데..'
평소 관심사에 끼지도 않던 낯선 서커스단의 공연이 괜시리 걱정스러운건 비 때문이었을까? 성의껏 준비한 무대, 관객의 박수에 흥에 취할 단원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심술궂은 날씨와 놀리듯 졸졸 내리는 이 비로 인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안타까웠다. 
차라리 시원하게 소나기나 오지. 도무지 그칠것 같지 않은 가랑비에는 답이 없으니까.

볼 일을 마치고 내 레이더가 여전히 동춘 서커스단에 꽂혀 있단 걸 감지하고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예상한대로 관객은 얼마 없었지만 공연은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 비가 올 지 모르는 장마철에, 뻥 뚫린 야외에서 하는 공연은 시민을 위한 것일까? 서커스단을 위한 것일까?쉬고 있는 구민회관의 강당들 많을텐데...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1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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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2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2

하지만 오히려 그 광경이 아름다웠다. 한 손으로 우산을 잡고 가방을 메고 열심히 박수치고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마땅한 대기실도 없이 근처 편의점 천막에서 겨우 비를 피하다 각자 순서가 오면 환한 미소로 무대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단원들.
운동 경기에서 이긴 선수가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했다" 라는 인터뷰를 한다. 이것이 서로를 믿는 경이로운 모습이 아닐까?

'순간의 딴 생각과 흔들림에도 위에 있는 단원이 다칠 수 있다. 빨리 자세를 잡고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밑에 있는 단원의 목과 머리는 남아나지 않을 수 있다.'
얼마나 오랫 동안 함께 맞추고, 삐그덕 거리고 배려해야 이런 신뢰가 생기는 걸까?

본래 의자란 자고로 네 다리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앉는데 지장이 없다. 이 중 하나라도 짧거나 긴 다리가 있다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네 다리 중 하나, 그것도 아주 좁은 면적에 의지하고 있다.

균형잡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아슬아슬한데, 위에 사람 떨어질까 조마조마한데 이 사람들 날 더 기막히게 한다.
저 자세로 밑에 사람이 360도 회전을 했다. 그것도 결코 느리지 않게...

가장 환호성이 컸던 것은 단연 '저글링박'.
입으로 조그만 탁구공을 가지고 저글링 하는 것도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관객들과 소통하고 익살스런 무대매너가 인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저글링 박'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갈 때 쯤 어디선가 반말로 "하나 더 해봐"라는 매너없는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길거리 공연이라지만 무대를 마친 사람에게는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저글링 박'은 특유의 재치로 품격 없는 그 중년에게 한마디 날리고 쾌활하게 퇴장했다.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3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3

나혜석과 동춘 서커스단, 돌하르방과 모니터처럼 딱 떠오르는 연결고리도 없고, 소주와 스테이크처럼 어우러져 보이지도 않는 조합. 

'최초' '도전' '고난'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근대 여성의 효시로 불린다. 배움에 대한 열정, 사랑 앞에서의 거침없는 솔직함, 요즘 시대에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결혼 전제조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여성관은 전통적인 여성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여성해방론은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의식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도전에는 항상 고난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남편과 이혼후 활발한 그림 활동과 '이혼고백서'를 통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경제적, 사회적 고립은 결국 그녀를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하게 하였다.

동춘 서커스단의 역사에도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일본 서커스단에서의 핍박과 멸시를 견디다 못해 독립한 '박동춘'이라는 사람이 조선인 30여명으로 창단한 국내 최초이자 지금껏 한국 전통 곡예를 이어오고 있는 국내 유일 서커스단이다. 
1960~70년대에는 영화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을 비롯해 배삼룔, 남철, 남성남 등 수많은 스타의 등용문이며 단원만 250여명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디어의 발달로 TV드라마 등과의 경쟁에서 패하면서 서커스단의 인기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저글링, 불쇼, 줄타기 등 끊임없는 도전과 연습으로 항상 무대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재정난과 갈수록 서커스가 사양화되자 2009년 11월 청량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다. 
나혜석에게 닥쳤던 역경과 달리 동춘 서커스단은 주변의 따뜻한 관심들로 인해 역경으로부터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동춘 서커스단을 살리자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자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2009년 12월 16일 문화관광부가 전문예술단체로 등록되어, 기부금을 공개 모금할 수 있는 지정 기부금 단체가 되면서 다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현재는 경마공원에서 정기공연을 하고 3개의 팀으로 나뉘어 진주 '개천 예술제', 밀양 '아랑제', 강릉 '단오제' 등과 같은 축제나 행사를 통해 전국에서 동춘서커스단을 만날 수 있다.

나혜석 거리에서 동춘 서커스단을 만나다_4
훌라후프 돌리는 소녀. 수십개의 훌라후프를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돌린다.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동춘'과 '서커스' 이 두 단어는 묘하게 중국을 연상시킨다. 현재 대부분의 단원이 중국인으로 이루어져있지만 뿌리는 엄연히 대한민국이다. 국내 최초이자 국내 유일의 전통 곡예단. 아리랑도 빼앗아가려는 중국인데 이러다 동춘 서커스단마저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실제로 눈 앞에서 보니 동춘 서커스단 공연은 신기함을 넘어서 애환이 담긴 아련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진정한 광대의 모습.. 기구한 사연으로 광대가 되어 언제나 관객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울고 있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의 고유한 정서가 '한'이라고 하는데 동춘 서커스단에도 분명 대한민국만의 무언가를 표현할거라 믿는다. 러시아의 '볼쇼이'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국가 브랜드를 드높이는 문화 사업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동춘 서커스단도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길 희망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동춘 서커스단의 새로운 컨텐츠 개발과 노력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와 개인의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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