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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감탄한 양상군자
2012-07-19 11:29:27최종 업데이트 : 2012-07-19 11:29:2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진순

벌써 3년전 일이다.
한여름이었던 딱 요맘때인 7월중순께 어느날 이웃집에서 난리가 났다. 대낮에 부부 모두 출근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없는 사이 좀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집안에 현금이나 귀금속을 놔두고 다니지 않아 많은게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책상 서랍에 있던 천원짜리 잔돈과 여름 방학때 책 사주려고 찾아 둔 5만원 정도가 화장대 위에 놓여져 있다가 없어졌다고 한다

일단은 겁이 나서 경찰에 신고했고, 한편으로는 도둑이 사람 없을때 와준게 고마웠고(?) 또 정말 다행인건 그 덕분에 사람이 다치지 않은게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사실은 그집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불우이웃 돕기 할거라며 주먹만한 플라스틱 저금통에 넣어둔 100원짜리 몇개를 칼로 찢어 꺼내갔더란다.

많은게 없어진건 아니고 그 저금통 몇백원마저 가져가 버린 검은 손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벌건 대낮에 남의 집 안방에 겁도 없이 들어와 그 돈을 꺼내 간 그는 생계형 도둑일까, 단지 용돈이 귀해 실례를 범한 젊은이일까. 아니면 평소에도 이 근처를 자주 돌아다니며 동네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보통 사람중 한 명일까. 나름대로 온갖 상상을 하며 동네에서 설왕설래가 오갔다.

사람 안 다친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고 위로하지만 마음이 내내 착잡하고 우울했다. 아이들이 오가는 집 주변에서 도둑이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찝찝했고,  요즘 세상이 너무 험악하니 앞으로도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변의 충고도 집중적으로 많이 듣다 보니 참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지내다가 그 일은 잊고 지냈는데 얼마전 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오십견의 아픔'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한참 웃고야 말았다.  하필 지금 왜 그 이야기가 눈에 띄였는지 모르겠다.
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 가 집 주인에게 손을 들라고 해도 안 들더라나. 그래서 큰소리로  다그치니 자기는 오십견이라 못 든다고 했다. 마침 강도도 오십견이라 둘이 앉아 오십견 이야기만 하다가 강도질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며칠 후 서로 연락하여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가서 치료비를 강도가 냈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유머라고는 생각이 되지만 꾸며낸 이야기 치고는 무척 인상 깊고 그럴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도둑도 맞고 사기도 당하는게 우리네 생활인데 학창시절 읽은 피천득 선생님의 시 '꽃씨와 도둑' 에 나오는 맘씨 고운 도둑을 그려 본다. 

꽃에 감탄한 양상군자_1
꽃에 감탄한 양상군자_1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불과 세 연, 6행, 12개 낱말로 이루어진 짧은 시다.
달밤인가. 밤눈 밝은 도둑이 담을 넘자 환하게 꽃들이 피어 있다. 어쩌다 도둑이 되기는 하였지만 원래 선량했던 도둑은 본업을 잊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웬 걸, 가난한 선비의 집이었던가. 방안에는 책들만 가득하다. 어릴 적에야 누구든 왕자가 아니던가, 누구보다 꿈도 많고 책도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왕자가 아니더라도 그 누가 젊은 날에 도둑이 될 꿈을 꾸었겠는가.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하고 밖으로 나서는 모습이 이 도둑은 전혀 죄의식이 없는 단순방문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밤이나 낮이나 도둑이 들까 불안에 떨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 모두 다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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