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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화목의 길-장남 예우를 가르치신 부모님
2012-07-19 13:16:19최종 업데이트 : 2012-07-19 13:16:19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나는 맏이, 즉 형제들 중에 장남이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은 동생들더러 "맏이는 부모다" 혹은 "장형은 아버지고, 장형수는 어머니다"라고 가르치셨다. 
어릴때는 그런 말이 뭔지 잘 몰랐다. 그저 형제들간에 싸우지 말고 잘 놀아라는 뜻 정도로만 알고 컸다.
그리고 어느 가정, 어느집에서나 다 마찬가지로 어릴때야 네것내것 할것 없이 그야말로 공동소유로 옷도 같이 입고, 고구마도 찌어서 사이좋게 나눠먹고, 같이 물장구도 치면서 놀았다.

가정 화목의 길-장남 예우를 가르치신 부모님_1
가정 화목의 길-장남 예우를 가르치신 부모님_1

그러나 결혼후 부터는 설날 세배를 할때 부모님께 절을 한 뒤 나머지 동생들은 나와 아내에게 절을 시켰다. 물론 우리 부부도 그냥 절만 받은건 아니고 가볍게 맞절을 하기는 했으나 이런 가풍은 어디까지나 장남에 대한 예우와 배려를 자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시려는 부모님의 깊은 속뜻 때문이었다.

그러던것이 나이가 더 들어 어머니 아버지가 연로하시다 보니 어머니가 그때 '장형은 부모다'라고 가르치신 말씀이 절절히 아로새겨진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첫 장에 그 책을 사게 된 동기나 느낌을 적는 습관이 있다. 모처럼 다시 꺼내 본 '장남으로 살아가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책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샀다. 장남(長男)은 왜 일남(一男)이라 하지 않고 장남이라고 했을까? 장남으로보다는 일남으로 살아 온 세월, 이 책에서 찾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겠지.' 

장남의 자리, 힘든 자리이다. 어디로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숙명의 자리이기도 하다. 집안의 모든 현실과 고통을 두 어깨로 지고 가는,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존재들이다. 
늘 마음 한곳에 그림자처럼 자리하고 있는 장남이라는 자리와 맏형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비록 그 책에서 정답은 찾지 못할지라도 "그래, 맞아"하는 동병상련을 느껴보고자 하는 속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도 장남이셨다.
지금은 비록 기억의 저편에 계신 아버지이지만 언제나 버팀목이며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실 것 같은, 그리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길을 가르쳐 주십사하고 매달려 보고 싶은 나의 아버지.
 항상 "응! 그래" 보다는 "왜?"라는 말이 더 익숙한 대화방식이셨고, 정겨운 대화나 아기자기한 추억은 비록 많지는 않더라도 내 뜻을 존중해주고 나의 진로선택에 신뢰를 보여 주신 아버지셨다. 

언젠가 추석 전 "연휴에 회사 일로 못올것 같습니다"고 했을 때, "장손이 차례에 빠지면 할아버지께서 서운해 하실 텐데?"하셨다. "아! 그러네요"하면서 회사에 사정 이야기를 하자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장손 타령이냐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회사에 선뜻 출장을 가기 어렵다고 말을 한것을 보면 내가 장남의 유전자를 갖고 있기는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형제애가 부러우면서도 장남과 맏며느리는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든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은 속담으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증명하듯 스스로 제몫을 잘 해나가는 동생들이 고맙다. 

어떤 글에서 보니 '때로는 장남도 울고 싶다'는 독백이 보였다. 요즘은 그나마 아이도 겨우 하나만 낳는 세월이니 이제는 장남이니 일남이니 할것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장남이라고 해서 울고 싶고 말고 할것도 없는 세상. 그러나 나와 동생들에게 늘 그렇게 가정교육을 시켜 오신 부모님들의 깊은 뜻은 내가 죽을때까지 가지고 갈 바른 길이다. 그것이 가정화목의 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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