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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면 뭣하냐? 니들만 고생이지!
가정의 달, 친정엄마에 대한 몇 장면
2013-05-21 09:52:03최종 업데이트 : 2013-05-21 09:52:0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1 아이스크림

"엄마 빨리 오셔요. 배도 부르니 소화도 시킬 겸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고요." 
친정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31가지의 맛,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갔다. 컵 아이스크림과 올망졸망한 케이크를 골라 탁자에 올려놓곤 재촉한다. 
"요즘 젊은 애들이 제일로 좋아한다는 아이스크림이니. 이것도 함께 드셔보셔요."
"아이고, 이가 시려서 어찌 먹으라고... 근데 야~ 요것이 얼마치냐?"

#2 커피전문점

"오늘은 커피전문점 가요. 젊은 애들은 가격이 저렴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이런데 와서 비싼 커피마시면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고 그러네요. 우리도 여기서 실컷 놀다가 가요."
'카페 000' 라는 곳이다. 홀(hall)을 둘러보니 친정엄마 빼놓고 내가 최고령자로 보인다. 
"에미야! 이것 모두 합해서 얼마냐? 아이고 그 돈이면 노인정 친구하고 점심 먹으면서 소주도 한 잔 할 돈인데."

 

오래 살면 뭣하냐? 니들만 고생이지!_1
오래 살면 뭣하냐? 니들만 고생이지!_1

#3 금반지

"며칠 전에 오빠가 선물했다는 금반지 들고 우리 집에 오셔요. 손가락에 맞게 줄여 드릴 테니."
"아이고 너 돈도 없는데, 뭣 하려. 그리고 할매들은 닷 돈은 껴야하는데... 오빠가 해 온건 두 돈이라.... 그냥 관둬라."

아침에 전화 통화를 할 때와는 달리, 점심 무렵 부리나케 딸네 집으로 달려오신 친정엄마.
"우리 딸이 해준다고 해서...나 죽으면 내건 다 니꺼다."
몇 달 모아둔 돈을 합해 닷 돈 쌍가락지를 맞춰드린 4일 후, 금방에서 반지를 끼고 싱글벙글 길을 나선 친정엄마.

"나 실은 딸한테 야단맞을까봐 전화도 못했지만, 며칠 잠을 못 잤다. 우리가 맡긴 두 돈 금반지를 맡겼다는 보관증을 안 받았잖니! 금방 문 닫았고 도망갔을까봐 얼매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4 딸아 현금으로 다오

"어버이날인데 뭐 사드릴까요. 아니면 엄마 필요한 것 사시라고 현금으로 드릴까요?"
"아이, 무슨 선물. 딸내미도 돈이 궁할 텐데.... 정 그렇다면 현금으로 다오. 노인정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먹을란다. 너 현오 할매 알지, 내가 저번에 말했잖니. 손자하고 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님이라고. 그 형님 불쌍해 죽겠다. 아들은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며느리 혼자 돈 버느라 애쓰는데, 손자 녀석은 퍽 하면 학교도 안가고....."

노인정 할매 누구누구는 아들 며느리에게 이번 어버이날 받은 돈이 총 얼마고, 누구는 어느 고기 집에 가서 한우를 먹고 용돈을 얼마를 받았다는 둥, 끝이 없다. 사설이 길어진 이유는 맨 나중에야 나온다.
"딸아, 나 이번엔 000원 다오."

#5 와인 얼마짜리냐? 맛있다

"엄마 점심때 우리 집으로 오셔요. 좋은 와인 있거든요."
"이것 먼저 드시고 천천히 마셔야지요. 와인은 입에서 혀로 굴려가면서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처럼 맛도 맛이지만 소화제의 개념으로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와인 한 잔 곁들인 다네요. 폼 나지 않아요."
"폼은 무슨 폼. 입에 댄김에 후딱 마셔야지. 그리고 남기면 뭐하냐. 김만 빠지지. 야, 그런데, 이것 얼마 짜리냐.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맛있다." 

친정엄마는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장사만 하셨다. 수 십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변변한 나들이 한번 못했다. 호강이란 말조차도 사치로 생각될 정도로 그야말로 고생만 죽도록 하시며 청춘도 보내고 중년의 문턱도 넘으셨다. 10여 년 전 아들과 딸이 사는 수원으로 오시면서 장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셨다. 

노인들이 햄버거 아이스크림 싫어한다고? 아니!

늘 머리에 쟁반을 이고 종종걸음으로 밥 배달을 나가시는 모습이 친정엄마에 대한 나의 이미지다. 세월이 흘러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늙어도 친정 엄마만큼은 늘 그렇게 쌩쌩 달리는 젊은 엄마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얼굴을 보니 주름과 치아는 여느 노파와 진배없었고, 그 튼실하던 다리의 근육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쩔뚝쩔뚝' 걸음걸이조차 완전 변해있었다. 
이제야 친정엄마 연세가 내년이면 팔십이란 생각이 명확히 떠오른다.

요즘 나는 '부모님 살아 계실 제 효도가 진짜 효도다'란 생각으로 산다. 시간 나는 대로 친정엄마를 모시고 젊음이 북적이는 곳으로 나서는 이유다. '늙은이들은 햄버거 싫어한다고!', '원두커피, 스테이크, 아이스크림...... 소화가 안돼서 싫다고!' 다 거짓말이다. 
젊었을 적엔 자식들과 시부모 모시느라 시간도 돈도 없었기에 그랬을망정 희생은 딱 거기까지만 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나? 아니다. 이제는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야~야~ 오래 살면 뭣하냐! 니들만 고생이지."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러니 함께 있어주세요. 그래야 엄마랑 내일 또 맛있는 것 먹으러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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