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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꾼들의 쉼터가 된 '불취무귀' 정조의 좌상
2020-11-10 15:42:29최종 업데이트 : 2020-11-10 15:42:21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정조 임금이 앉아있는 돌담 옆이 공중화장실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 앞에 앉아 군것질을 하고 있다

정조 임금이 앉아있는 돌담 옆이 공중화장실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 앞에 앉아 군것질을 하고 있다



예부터 '딸 시집과 변소 간은 멀을 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생계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끼니(밥)를 굶는 집이 다반사 였다.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 안나는지를 보면 그집에 끼니를 먹는지 굶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굴둑에 연기가 안보일 만큼 딸 시집을 멀리보내 딸네 집 속사정을 아예 모르고 지내는 것이 낫다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낸 말이다.

 

옛날에는 비록 초라한 초가삼간 집에 살지만 변소 간(便所間 화장실)은 안채에서 멀리 떨어진 마당 한쪽 귀퉁이나 대문 밖이나 사릿 문 밖에 변소 간을 지었다. 변소 간은 배설물이 있는 곳이라 가까이 있으면 거역스런 냄새가 진동하고 혐오스러웠기 때문이 었다.
 

그런데 필자가 남문 시장을 지나다 보니 정조 임금이 남문시장 공중변소 간 옆에 홀로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정조 앞에는 장꾼들이 가로막고 앉아서 군것질을 하고 있다. 정조가 앉은 좌대(座臺)에는'不醉 無歸(불취 무귀)'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한자대로 풀이 하면 '술이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조의 불취 무귀의 깊은 뜻은 다른데 있었다.

 

1792년 어느 봄날이었다. 정조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성균관 유생들을 창덕궁 희정당에 모이도록 했다. 수십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유생들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규장각과 승정원, 호조에 있는 술까지 모두 모아다 놓았다. 정조는 건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들은 술로 취하게 한 뒤에 그 사람의 덕을 살펴본다"라고 하였다. 그러하니 "오늘 취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라고 하였다.(정조실록)

 

정조의 이 말은 심각한 붕당 간 대립을 해소해 보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당색(黨色)이 다르면 조문(弔問)도 하지 않는다는 중신(衆臣)들의 갈라진 마음을 어떻게 하든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게 정조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여러 붕당의 유생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여 짐(임금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친히 내린 술을 마시고 서로 어우러지는 계기를 만들려 했다. 술자리는 그렇게 해서 마련된 것이다.

 

정조는 '불취 무귀'를 통해 중신들의 붕당을 없애려는 탕평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정조의 의도와는 달리 시장바닥 공중변소 간 옆에 앉아서 시장에 오고 가는 장꾼들이나 불러 '불취 무귀'나 하라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처음에는 남문시장 도로(通路)한 복판에 설치했다가 어차 통행로로 정비하면서 유랑 박물관 관광상품 체험장 건물 옆으로 옮겨 앉았다.

 

그러자 시장을 보러 온 장꾼들은 정조 앞에 장을 본 짐꾸러미를 올려놓기도 하고 평상처럼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장꾼들이 쉼터로 이용해왔다. 그래서 다시 이전한 곳이 지금의 공중화장실 옆이다. 하지만 장꾼들은 여전히 정조를 따라다니며 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장을 보러 온 우만동에 사는 김 모(80)씨를 만나 정조에 대해 물어봤다. "정조 임금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럼요. 수원시민들은 다 일죠. 매년 행궁에서 행사도 하잖아요" 한다. "공중화장실 옆 정조 임금 좌상에 장꾼들이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었다. "옛날 같으면 어가 행차만 해도 엎드려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언감생심(焉敢生心) 임금님 용안(容顔)이나 볼 수 있었나요?" 한다. 그러면서 "정조 임금님이 궁궐에 있어야지 왜 시장바닥 화장실 옆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장꾼들이 아무 생각 없이 평상같이 평평하니 앉아 쉬기가 좋으니 그러는 거 아닐까요" 한다.

 

정조의 좌상이 비록 시설물이긴 하지만 정조가 있을 곳은 궁궐(행궁)이지 시장바닥이나 공중변소 옆이 아니라는 것이 한 시민의 생각이다. 옛말에 '걸래는 아무리 깨끗이 빨아도 행주가 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화장실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화장실은 화장실일 뿐이다. 하고많은 장소를 다 놔두고 하필이면 공중변소 간 옆에 정조 임금을 앉혔을까?

 

정조의 유산이 수원시의 자산(資産)이다. 올해는 코로나 19 감염위험으로 수원화성문화제가 취소됐지만 매년 국제적 행사로 열려 1천만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수원을 찾아온다. 역사성이나 대중성 주위 환경을 고려한다면 자리를 행궁으로 옮겨 행궁을 찾는 내 외국 관광객들이 정조 임금의 '불취 무귀'의 깊은 뜻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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