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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외출 긴 여운
2010-08-09 08:55:20최종 업데이트 : 2010-08-09 08:55:2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낮의 기온은 30도 중반에 가깝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도시를 빠져나가는 피서객들의 행렬은 계속 되고 있었다. 

이번 여름은 기습적인 잦은 폭우와 비온 뒤의 땡볕 더위가 반복되었고 습도가 높아서 불쾌지수가 어느 때보다 더 높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낮에는 어쩔 수 없이 에어컨 바람에 더위에 지친 몸을 의탁해야했고 저녁이면 아이들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제 방학도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미루어 두었던 방학숙제도 슬슬 시작해야 한다. 가족들과 추억 만들기를  함께 하지 못했다면 주말에 짧은 외출이라도 해야 한다. 

흔히들 주부들은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엄마는 개학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바빠지고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느 때보다 훨씬 한가롭게 지내고 있다. 큰아이는 방학 동안에도 등교하였으며 사이 사이 학교에서 수련회와 전방부대 견학을 며칠씩 다녀왔기 때문이다. 더더욱 손이 많이 가는 작은 아이가 장기 여행을 가고 나니 학기 중의 생활보다 훨씬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큰 아이는 방학 중에 실질적인 방학도 학교 행사로 다 써버리고 주말이 되어서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던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면서 영화관을 가지 못했다. 파김치가 되어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전신 안마로 깨워 참으로 오랜만에 극장엘 갔다. 이른 저녁시간이었음에도 한 두 프로의 예매는 모두 끝나 있어서 여유 있게 저녁을 먹고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로 조조 영화를 보는 내가 표를 사기 위해 영화관에 갔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에 입이 딱 벌어졌다. 친구들과 연인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온 영화관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깐 동안 영화를 봐야 할지 그냥 돌아가야 할지 고민도 했었다. 

영화관을 빠져 나온 바깥은 다행히 비구름이 몰려가고 제법 시원한 산들바람까지 불었다. 아이와 남편을 대동하고 한낮에 시내를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팔짱 낀 두 남자의 보폭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자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숏다리라 따라오기 힘들죠?" 언제나 그랬다. 가족들과 함께 걸을 때면 종종거리고 빠른 걸음을 걸어야 했다. 우리 집 남자들은 배려해준다고 천천히 걷는데도 다리 길이에서 비교되지 않아 아이들이 우스개 소리를 했다. 결코 작은 키가 아닌, 그 시절의 평균 신장보다 큰데 숏다리라고 불려지다니.... 

이른 저녁의 음식점에는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음식점에 가거나 여행을 다녀도 가족들보다 더 좋은 구성원을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항상 엄마와 아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계획과 배려 속에 서 있는 자리가 좋다. 
조금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보호 받는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공주병이라고 놀리는 지인들도 있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저녁을 먹었지만 오랜만에 팝콘과 콜라도 샀다. 영화 상영 전에 나오는 광고와 예고 프로도 봤다. 항상 상영 시간에 맞춰 다녔기 때문에 상영시간 이후의 광고 시간 7분도 길게 느껴졌는데 동행이 좋아서였을까 전혀 지루하거나 짜증스럽지가 않았다. 

터널 같은 영화관 출구를 나오는데 큰 아이가 어깨를 툭 쳤다. "엄마 오늘 많이 피곤하셨어요?" 한다. "왜?" 했더니 "엄마 아까 영화 보면서 졸고 있던데요."한다.  

사실은 큰아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며칠 전에 먼저 봤던 프로였다. 가족과 함께 영화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함께 했더니 긴장감이 떨어져 졸았나보다. 

돌아오는 밤하늘은 검고 어두운 구름으로 한층 더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지금 시원한 바람이 밤새 또 폭우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폭우가 지나간 말복에는 고추잠자리가 연상 되는 화창하고 새파란 하늘이 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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