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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바람과 에어컨 바람
2010-08-10 10:49:05최종 업데이트 : 2010-08-10 10:49:05 작성자 : 시민기자   유진하

며칠 전에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보니 벌써 목이 아파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찔끔 나기 시작한다. 밤에 너무 더워서 회전시켜놓았던 선풍기를 나에게 고정한 탓이다. 
어렸을 적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무작정 너무 덥다고 얼굴에다가 바람이 오게 해놓고 자려고 했었는데, 부모님이 그러면 위험하다고 나를 말렸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계속, 선풍기를 잘 때에는 내 허리 밑으로만 가게 했었다. 충분히 시원하고 무더위를 견딜 만 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어딜 가도 에어컨이 보인다. 성격이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향 탓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모든 인간이 그럴까. 조상들은 이런 찜통 같은 더위에도 부채 하나로 살았다는데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자마자 덥다고 에어컨을 무작정 최저온도로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서 조금만 지나면 너무 춥다고 또 온도를 올리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강의를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수업을 들어오면, 당연히 움직여서 왔기 때문에 덥게 마련이다. 처음에 수업을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들어오자마자 부채를 요란스럽게 휘저으며 에어컨으로 달려가서 최저온도로 내려버린다. 그리고선 수업 시작하고 10분만 지나면 모두들 추워서 누가 저렇게 에어컨 온도를 내렸는지 원망스러워하기도 한다.

선풍기는 그래도 에어컨만큼 춥지는 않다. 선풍기는 주위의 공기를 보내준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냥 선풍기 앞의 공기들을 빨리 빨리 보내준다. 
에어컨은 공기를 바꿔서 내보낸다. 시원하게 바꿔서 공기 전체의 온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감기에 안 걸리려면 선풍기를 고정시켜놓고 자는 것보다 적정 수준의 온도로 에어컨을 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전기 값은 에어컨이 몇 배는 더 나오겠지만 말이다.

선풍기 바람과 에어컨 바람_1
선풍기 바람과 에어컨 바람_1

사실 내가 보기에 가장 기분이 좋은 방법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주위 동네를 걷다보면 분명히 정자나 공원이 있을 것이며, 나무그늘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곳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다. 그러나 그 곳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 못지않게 시원하고, 기분도 좋다. 인간이 평생 동안 걱정하는 감기 따위나 냉방병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한낮의 더위만 피하고 나면, 오후부터는 집안에서도 참을 만 할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핸드폰이 흔치 않았다. 매일 집 전화로만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않았다. 한 번 약속을 하고 나가면 다시 연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약속 장소에 나가고 있는데도 핸드폰으로 갑자기 연락이 틱 온다. 미안하다며 늦는다거나 다른 날에 보자면서 말이다. 나갈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이유로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먼 곳의 친구와 편지로 주고받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요즘에는 핸드폰 문자의 답장이 늦게 오는 것만으로도 짜증의 이유가 된다.

나는 앞으로의 세계가 참으로 기대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발전이 여기서 멈추어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발전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물질과 비물질의 발전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부작용은 고착화되기 쉽다. 특히나 물질의 발전이 앞설 경우에는 심각하다. 인간은 선풍기로 만족하지 못하고 에어컨을 발명해냈다. 인간은 만족을 쉽게 잊는다. 그 만족감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기계가 또 등장해서 우리의 더위를 식혀줄 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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