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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갈이한 구두를 보면서
"생활에 대한 애정을 생각합니다'
2010-08-22 10:27:35최종 업데이트 : 2010-08-22 10:27:35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관
얼마 전 구두 두 켤레 굽갈이를 하였다. 굽이 닳아 보기에 안 좋고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잘 손질되지 않은 구두를 보면 왠지 게으름이 떠오르는 것이다. 모 제화회사의 광고 문안 '구두는 패션의 완성'이 각인되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신던 구두가 유명제화라 백화점마다 점포가 있다. 하나는 1만2000원, 또 하나는 1만원의 선불을 주었다. 7월 하순에 맡겨 8월 중순에 찾았다. 구두를 찾고 나서 자꾸 구두를 살펴본다. 뒷굽을 유심히 본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굽갈이 한 것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굽갈이한 구두를 보면서_1
굽갈이를 한 필자의 구두 두 켤레

문득 윤흥길의 단편소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떠오른다. 대학은 나오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권씨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구두이다. 셋방살림이 어려워도 10켤레의 구두를 깨끗이 닦고 하루에 한 번씩 구두를 갈아 신는다. 어느 날 그는 부인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주인집을 대상으로 복면 강도짓을 하다 들켜 자존심이 상한 채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는다. 집에는 아홉켤레의 구두만 남아 있다.

필자의 신발장을 살펴보았다. 구두를 세어보니 총 여섯켤레다. 검은색이 네 켤레, 브라운 계통이 두 켤레. 가장 새 것이 3년 전에 산 것이다. 총각 때 신던 것도 두 켤레나 된다. 그러니까 그 구두는 20년이 넘은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바닥에 구멍이 났다. 비 오지 않는 날 가끔 신은 기억이 난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구두점은 다 굶어 죽겠다. 구두굽이 닳았으면, 어느 정도 신어 헌 것이 되었으면 버리고 새구두를 사야 하는데 구두마다 최소 1회 정도는 구두를 갈아 신으니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굽갈이를 3회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경험으로 볼 때 구두 수명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다. 새구두를 신으면 발걸음이 활기가 차고 음식점 등에서 구두를 자랑스럽게 벗어 놓는다. 그러나 헌 구두는 왠지 감추고 싶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다. 검소한 것은 챙피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필자의 유년기, 그 당시 어른들은 구두굽에 쇠징을 박기도 하였다. 그야말고 구두쇠를 박은 것이다.

한 5년 전만해도 집에서 구두닦이가 일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베란다에서 구두를 닦았다. 솔질을 하고 구두약을 바르고 융 헝겊으로 윤을 낸다. 그리고 얼굴을 비추어 본다. 만족감을 느끼고 신발장에 구두를 정리 한다. 이게 바로 생활의 여유다.

그러나 요즘은 게을러졌는지 생활의 여유가 없는지 정서가 메말랐는지, 나 자신 가꾸기에 관심이 부족한지 구두 관리가 소홀해졌다. 비에 젖었는데도 흙이 묻었는데도 그냥 둔다. 오늘 구두를 살펴보면서 '생활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 본다. 혹시 삶에 대한 활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이영관님의 네임카드

이영관, 구두 굽갈이, 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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