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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풍경
2010-08-10 20:52:05최종 업데이트 : 2010-08-10 20:52:05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다시 하늘이 뻘개졌다.  저녁노을이 질 때면 붉게 달아오른 하늘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오늘은 다른 때 달리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해가 났다가 죽 끓듯 변덕이 심한 하루였다. 

아침에는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로 집안에 꽁꽁 묶여 있었다.  작은 틈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을까 창문을 꼭꼭 닫아 놓고 타닥타닥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비오는 날의 풍경_1
비오는 날의 풍경_1


봉지커피를 곱배기로 탄 머그컵을  들고 집안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벌써 며칠 동안 주인 없는 작은 아이의 책상에 앉아서 물끄러미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학년이 시작 될 때 만들어준 시간표에는 뛰어노는 아이들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저 그림 때문에 공부보다 놀기를 더 좋아하는 것 아냐?' 생각이 들었다. 
삽화를 한참 보고 있자니 '그런대로 그림 꽤 잘 그렸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된 큰 아이의 책상은 굴러다니는 펜 하나 없다.  
거울 앞에 손 세정제와 스킨 그리고 로션도 가지런히 줄서 있다.  큰아이의 방은 매일 봐도 변화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엉성한 작은 아이가 형 물건을 만질 때마다 표시가 잘 났다. 금방 알아차리고 주의를 주는 조금은 까칠한 방주인은 재미없다.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책상 위에 작은 열쇠가 눈에 띄었다. 학교 사물함 열쇠였다. 책상 위에 챙겨 놓은 열쇠를 등교 할 때 두고 간 모양이었다.  아직도 바깥에는 세상을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폭우가 내리는데 갈등이 생겼다.  '필요하면 전화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이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게 아침드라마 챙겨보게 되었다.  보던 드라마가 종영하여 그 계기로 아침드라마를 끊어야지 결심했었는데 외출하지 못하는 오늘 같은 날은 또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벌써 미지근해져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불륜이 판치는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었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배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도 마땅한 프로가 없다. 다시 머그잔을 들고 베란다에 동그마니 앉았다. 어쩌면 멀지 않아 비가 그칠 것도 같다.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자 시원한 바람이 확 들어왔다. '아! 시원하다' 

남편이 출근하면서 거실에 아무렇게나 펼쳐 논 신문과 책을 정리하고  게으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가득 쌓인 빨랫감도 세탁기 안으로 숨기고 오랜만에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쓱쓱 닦아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내친김에 냉장고 정리까지 하고 나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반짝 해까지 나왔다. 

옆 동에 있는 친구를 불러 아파트에서 열리는  장에 함께 갔다.  폭우로 평소 오던 상인들이 덜 왔는지 거리에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사람들도 많지 않고 한산하여 걸어 다니기에 딱 좋았다. 
아이 주먹만 한 자두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작은 아이가 있었으면 자두나 복숭아를 샀을 텐데.  시장에 와 봐도 반찬거리 할 특별한 것이 없다. 물건들이 거기서 거기로 매일 같은 품목처럼 보인다.  그런데 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나보다.  시장에 나왔지만 손이 쉽게 가는 것이 없다.  대파 한 단 봉지에 넣어서 달랑달랑 들고 왔다. 

갑자기 해가 사라지고 어두운 구름이 몰려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이를 서둘렀지만 집을 저만치 두고 후두둑 후두둑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단에 서있는 넓은 토란대 잎사귀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툭하고 한쪽으로  쓰러질듯 흔들렸다. 

어린 시절 하교 길에서 비를 만나면 오동나무 잎사귀에 머리를 가리고 뛰어갔던 생각이 났다.  우산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아도 마냥 즐겁고 물이 고인 웅덩이도 놀이터가 되었고 오염된 비라서 머리카락 빠질까 걱정도 안했던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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