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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2010-07-29 13:49:43최종 업데이트 : 2010-07-29 13:49:43 작성자 : 시민기자   강동규

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좋아한다.
딱히 이유도 없고 뭐랄까, 번잡한 도시에 어깨 부딪치며 사는 것도 그렇고 아마 세월 탓일까? 나지막한 오솔길을 걷다 느끼는 바람소리 같은 선율이 좋아서일까? 바흐의 목소리에는 청아한 단순함, 이심전심 소리 없이 전하는 마디 굵은 손마디에 실려 있는 한같은 색깔이 있다.


80을 바라보는 노모는 손자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등에 업어 잠재우며 손수 키웠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된 손자는 그 옛날 할머니 기억은 아득한가 보다. 사내 녀석이라 감정표현도 무디고 몇 차례씩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자고 노래하듯 하면 마지못해 한마디 "예, 예" 하고는 끊는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전화에 대고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등교하지 않은 주말에 다녀가길 원하신다. 그저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손자모습만 그리시면서......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부부는 주말 새벽을 달려 하루 코스로 시골을 찾는다.
고작 3시간 거리지만 중년의 세월은 가기도 쉽지 않고 오기도 어려운 것이 고향인가보다.
그 옛날처럼 더 넓은 논밭을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텃밭에 잡초제거하고, 울타리세우고 옹기종기 심은 유실수 정리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어쩌다하는 농사일도 이젠 서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_1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_1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 어머니의 흔적은 세월이 흘러도 곳곳에 서려있다. 각종 채소에다, 토마토, 참외, 가지가 줄지어있고, 복분자, 자두, 포도 그리고 장대 같은 옥수수 골마다 곱게 자란 고추... 이 어찌 태양과 이슬만 먹고 자랐겠는가?

세월은 흘러도 막내로 자란 자식에 대한 애증이랄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시골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무겁다.
쌀자루를 비롯해 모든 야채다발 애뜻한 손주 생각하며 새벽 내내 따서 고이 보관해둔 복분자며 감자 박스, 한 여름 뙤약볕에 그을린 얼굴에 손마디마다 상처투성이처럼 엉킨 두 손에는 용돈 봉투를 들고 계신다. 그렇게 보고픈 손주의 용돈이다.

가슴 밑으로 촉촉이 젖어오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작아져가는 내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이 필요할 때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오케스트라에서 저음의 반주 파트, 조연에 불과했던 악기, 바이올린처럼 섬세하지 않은 첼로에 심오하고 깊은 명상의 옷을 입혀 당신의 인생만큼이나 두툼하게 만든 곡.
그래서 고독한 구도자 같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좋다.

바흐, 세월, 손자, 강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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