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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힘은 가족이었다
2010-08-05 08:25:00최종 업데이트 : 2010-08-05 08:25:00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간밤에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할 때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창문을 닫기 위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일어나야만 했다. 베란다에 비가 들이치더라도 특별하게 젖거나 피해보는 것은 없었지만 빨래건조대가 항상 만원이었던 것에 무의식적으로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없이 두 번째 밤을 보내는 날이었다.  남편의 늦은 귀가로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보내야 했다. 밥 때가 되어도 누구를 위하여 밥 차릴 일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먹겠다고 주섬주섬 수저를 놓고 찌개를 끓이는 수고는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끼니를 주전부리로 대충 때우거나 건너 띄어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해가 떨어진 이른 밤 스멀스멀 어둠이 천천히 몰려오는 것을 소파에 대강 앉아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어둠과 함께 외로움이 몰려왔다. 

아이들과 남편이 눈앞에서 복작거리고 다닐 때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꿈꾸었다.  엄마와 아내의 이름으로 잔소리를 해도 과하다, 그만해라 짜증 없이 모두 들어 넘기며 허허실실 하던 큰 아이의 웃음이 한없이 오래 전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조용하게 클래식을 들으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바깥 꽃나무들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시간보내기가 소원이었던 것이 아이들이 없고 보니 물거품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어둠이 들어오는 베란다, 꽃들의 형체가 잘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한없이 고정되어 있는 시선 끝에는 만개한 꽃잎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참 우습다. 평소 필자의 지인들은 말했다. 
"가까이 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부럽다" 고.  그런데 지금 외로워도 혼자 있어야한다. 

밤 12시가 되면 사라지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도 아니면서 친구들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정으로 돌아갔다.  태양의 기운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인형처럼 밤에는 방전된 건전지 같았다. 이렇게 십 수 년을 살다보니 주변의 친구들도 밤 나들이와는 무관했다. 

현대인의 필수라는 음주와 가무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나 찾아야 했고 그야말로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귀가 시간보다도 더 빨랐다. 어쩌다 네온사인이 빛나는 곳을 지나칠 때면 딴 세상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참 재미없게 사는 것이 이렇게 사는 것인지 따분한 생각이 몰려 왔다. 

어둠이 내리고도 한참을 그렇게 더 있었다. 
"띠리리 띠리리" 전화가 불렀다.  

반갑다. 전화 벨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소리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북경으로 여행 간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신 엄마들 부르며 열심히 재잘거린다.  건너편 전화 목소리는 경쾌하고 밝고 즐겁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효과가 강력한 약을 먹는 것처럼 힘이 솟아났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늦은 귀가에도 집에서 꼭 식사를 하기를 원하는 남편의 저녁상이 생각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님이 담가 주신 보약 같이 먹고 있는 된장에 멸치 넣고 호박 송송 썰어 찌개를 끓여야겠다. 

안식, 편안함, 휴식이라는 말들은 가족이 함께 각자 자기 자리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무기력 속에 빠져 있다가도 벌떡 일어 설 수 있는 에너지는 신체의 편안함 보다는 마음의 안정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또각또각 도마 위의 채소들을 썰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가족, 어둠, 네온사인,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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