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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5)
흑인의 영웅, 자메이카의 국민가수 밥메리의 음악을 듣다.
2008-04-05 12:10:28최종 업데이트 : 2008-04-05 12:10:2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우리네 습관은 준비한다는 이유로 걱정을 미리 당겨하는 부분도 참 많다. 그러니 그들의 습관대로 미리 걱정하지 않고 닥치면 알 일이고 또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바에는 굳이 미리 걱정을 앞당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경사진 내리막길인 것을 아는 것과 미리 아는 것은 별 차이가 없는 일이며, 내가 미리 그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수차례 그 고민을 하였으리라. 생각이 미치면서 새삼 가이드 다와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경사진 길은 마치 내 몸을 공 굴리듯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그런데 이도 보통 일은 아니다. 

말없이 길을 내려갔다. 
어느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다와에게 통증을 호소하고 왜 이러는가 물었다. 고소증세란 너무 급하게 내려가도 오는 증상이란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걸음을 늦추어야했다. 하지만 몸은 급하게 쏠림현상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급경사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급경사다. 다와에게 물었다. 얼 만큼을 더 가야하느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5)_1
묵디낫 3800미터의 호텔 밥메리 앞에 마을 할머니가 목도리를 짜고 있다. 검게 탄 얼굴이 고산의 고행이 깃든 듯하다.
해발 5416미터에서 오늘 도착할 곳은 묵디낫으로 3,800미터 고지다. 그러니까 1616미터를 내려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 거리가 짧고 경사가 심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그재그로 걸었던 모양이다. 직선거리로 가자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머리 아픈 증세에 고통이 더했으리라. 또한, 온몸의 체중과 배낭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몸에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사용하지 않던 앞 근육의 통증과 발목의 통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얼음판과 눈길을 걸어야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아침 여덟시에 정상에 올라 바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가 아니란 사실이다.

걷고 또 걷고 내리막길을 조심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앞을 보고 걷는 두려움이라니, 낯선 걸음이다. 더구나 나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경사진 언덕길을 무작정 걷는 것이다. 절로 무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그저 삶의 희로애락을 다시 떠올린다. 삶의 길이 이런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태국을 거치고 태국에서 카트만두에 내려 다시 이곳 안나푸르나를 향해 오면서 베셔셔르에 첫발을 딛었을 때, 안나푸르나의 설산에 대한 것이 가장 특별한 기대였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5)_2
고봉은 5000미터가 넘는 곳이다. 그 아래로 히말라야의 눈이 녹아 이룬 경작지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생이 기약 없이 왔던 것이라지만, 삶의 과정이 베셔셔르 이후의 일주일 동안 겪은 것과 같고 이렇게 정상을 넘어선 이후가 어쩌면 생을 마감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닐까? 어쩌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견뎌온 세월을 뒤로 하고 자신의 일생을 마무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내리막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단지 내리막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하게 부려놓는 길이 아닐까? 반문하고 반문하며 깔끔한 삶의 길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걷기에 지쳐 깊은 사색의 과정을 겪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은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하다.  
 
이제 멀리 묵디낫이 눈에 들어온다. 
묵디낫에 내려서기 전에 계곡과 계곡을 철제로 연결한 다리가 나온다. 세차게 불어오는 계곡바람에 다리가 휘청휘청 울림을 준다. 조심스레 다리를 건너 간이음식점에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 
사이다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전날 유쾌하게 맥주병에 숟가락을 꼽고 노래를 불렀던 영국인 친구가 그의 가이드와 함께 절벽을 내려온다. 그가 도착하고 음료수를 함께 마신 후, 식사는 숙소를 정한 후에 하기로 했다. 
12시 20분이다. 새벽 네 시 사십분에 출발하여 배도 고프다. 더구나 전날부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편안하게 숙소를 정하고 휴식을 만끽하며 식사를 하고 싶다. 
이제 몸 상태도 한결 좋고 정상을 넘어섰다는 성취감에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십여 분을 걸어 숙소인 밥메리 호텔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5)_3
네팔을 처음 찾았던 2004년 네팔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영국인 신사 제이미가 안내해준 묵디낫......, 그의 집에서 티슈에 그림을 그려주면서 묵디낫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었다.
규모 있는 호텔이었다. 
네팔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영국인 친구 제이미를 통해 묵디낫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휴식을 취하고 싶다. 
토롱-라를 넘어 절벽 같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묵디낫의 생김새를 유심히 보았지만, 꼼꼼하게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쉬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밀린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 다음, 식사를 주문했다. 
호텔 이름에 걸맞게 좋은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밥메리는 네팔 사람들에게 꽤 유명한 팝싱어인 모양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모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전만해도 달콤한 휴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식사 후 몸은 한결 편안해졌다. 

밥메리 호텔 1층에서는 포켓볼을 칠 수 있었다. 이 깊은 산중 묵디낫에 해발고도 3800미터나 되는 이곳에서 포켓볼이라니..., 놀라면서도 가벼운 휴식을 즐기는 데는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와와 가벼운 마음으로 포켓볼을 쳤다. 
당구조차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룰을 몰라 헤맸지만 주변에 다른 독일인과 영국인 가이드와 포터들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우리가 게임을 끝내자 하나 둘 게임을 즐겼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풍경이다. 포터 일을 하고 가이드를 하는 친구들이 언제 포켓볼은 배웠을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5)_4
묵디낫을 내려오며 3500미터가 넘는 길에 나그네를 기다리며 빈 의자가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잠시 후 나는 홀로 숙소에 들어가 숙면을 취했다. 점심 식사 후 간단한 게임을 즐긴 후다. 
책을 읽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깊이 잠들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주변을 걸었다. 그것도 잠시다. 카트만두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잘 연결되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한 끝에 내 방이 있는 카트만두 사마코시 집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사하게 토롱-라를 넘어섰다며 안부를 전했다. 간단한 통화였다. 

*밥메리 : 그의 음악을 호텔에서 듣고 한국에 와서 검색을 하고 나름 조사를 하였다. 최근 그의 전기가 한국에서도 출간되어 나는 그의 전기를 읽었다. 자메이카 태생인 그는 자이나교 신도였으며 흑인의 영웅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았다. 그가 가는 어느곳에나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그를 반겼다. 그의 장례식은 자메이카의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삶은 현재에도 계속 조명되고 있다. 세계의 어떤 팝스타도 그처럼 화려(?)한 최후를 맞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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