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9대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을 다녀와서
2010-07-15 07:00:17최종 업데이트 : 2010-07-15 07:00:17 작성자 : 시민기자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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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근무와 약속이 겹친 일요일 오후. 조선 9대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을 다녀와서_1 무심코 지나다니던 선릉(宣陵)역을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지하철에서 내리니 역이름부터가 관심이 갔다. 베풀선에 언덕릉 자를 쓰는 곳이니 분명 백성에게 베품의 정치를 한 훌륭한 왕의 무덤이겠거니 나름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남자걸음으로 대략 5분 정도의 거리에 선릉매표소가 있었고, 대인은 1000원 소인은 500원이라는 친절한 직원의 말에 따라 1000원을 지불하고 입장권을 받아들었다. 운 좋게 때마침 해설사께서 막 도착한지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입구에서 선릉까지 갈 수 있었다. 능이라는 것이 언덕을 뜻하는 바와 같이 어느 정도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약간의 등산기분으로 살짝 올라가니 거기엔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하셔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실 선릉개방시간은 오후2시반부터로 명백히 입구에 적혀 있는데 누군가가 그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는 말이어서 성숙된 국민의식이 아쉽기도 하였다. 조선 9대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을 다녀와서_2 드디어 해설사의 설명시작. 우선 선릉이라는 것은 조선9대 임금인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으로 능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종은 좋은 군주로 손 꼽을 수 있다. 간단히 성종의 업적을 얘기해 보자면 세조때부터 편찬해오던 경국대전을 1485년(성종16년) 완성하여 반포했고, 1492년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하였다. 세조 때 공신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사림파를 등용, 훈신과 사림 간의 세력 균형을 통해 왕권은 안정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고 설명해 주셨다. 거기에 이어 능의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능 주위에 보이는 석물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가장 자주 보이는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말은 임금의 혼을 끝까지 지키고 어명을 끝까지 받들기 위해 돌로 문인과 무인을 조각하여 임금곁에 두게 한 것이며 석마는 그들이 빨리 임금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안쪽을 바라보게 배치하였다 한다. 또한 능을 둘러싸고 있는 석양과 석호, 즉 돌양과 돌호랑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변의 잡귀를 쫓아주는 성스러운 동물들이라고 하여 능에서 바깥쪽을 바라보게 배치되었다고 하였다. 조선 9대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을 다녀와서_3 또한 임금의 혼이 쉬었다 갈 수 있는 혼유석(魂遊石)이라는 것과 혼이 잘 찾아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하는 망주석 등 여러가지 부속물들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주셨다. 역사와 능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장장1시간에 걸쳐 해주시고 설명은 끝이 났고 끝까지 해설을 듣던 10여명은 큰박수로서 감사를 표했다. 사실 우리가 부르는 선릉은 선릉과 정릉이 합쳐져 선.정릉으로 부르는게 맞으나 지하철역이 선릉으로 불리우며 모두들 선릉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릉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제9대 임금 성종의 무덤이고 정릉은 제11대 임금 중종의 무덤이다. 하지만 개방은 선릉밖에 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릉은 멀찍이서 감상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선릉 해설을 다 듣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천천히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벤치마다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민들이 있었고 혹은 돗자리를 펴고 거기에 누워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장난을 치는 무리들도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물론 이렇게 큰 능역을 조성하면서 많이 힘들었겠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후세들은 참 좋은 환경을 누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산책길을 걸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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