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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압록강변에 서다
2010-07-15 15:25:45최종 업데이트 : 2010-07-15 15:25:45 작성자 : 시민기자   박종명

이번 중국여행중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압록강 철교를 올라가 단교가 된 다리끝까지 걸어보고 단동 압록강 건너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는 신의주를 보고 왔다.

비행기로 인천국제공항에서 대련까지 비행기로 1시간 20분 걸려 도착했으며 단동에 버스로 4시간 걸려 도착했다.

첫날 저녁식사를 단동에 있는 압록강철교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돼 버스로 지나면서 다리야경 모습이 보게 됐는데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식후에 압록강 다리야경을 담아 보았는데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다채로웠다. 

꿈에 그리던 압록강변에 서다 _1
압록강다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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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압록강변에 서다 _2
표를 구입 입장해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압록강 처음보니 왠지 가슴이 설레고 짧은거리에 있는데도 이제야 와서 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말이 없었다.

6.25 동란 시기에 미군의 폭격으로 중국쪽만 남고 부서져 버린 그 다리 바로 옆에 새 다리를 다시 놓고 부서진 다리는 남겨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중국 단동 압록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신의주와 연결되는 중조우의교(中朝友宜橋)이며 또 하나는 관광지로 개발된 압록강단교(鴨綠江 斷橋)이다.

자료에 의하면 압록강단교는 본래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가 1908년 8월 만주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중에서 약 51만명의 인력을 동원, 1911년에 완공한 것으로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보급로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944m, 총 12교각으로 9번째부터는 강을 오르내리는 범선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90도 회전가능한 개폐식으로 만들어 열면 十자가 되고,닫으면 一자가 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국군이 압록강가까지 진격하자 모택동이 중공군의 개입을 결정, 이 다리가 중요한 군사 요충지가 됐다. 
따라서 미군이 이 다리를 폭격해 지금처럼 일부 교각만 덩그라니 남아 단교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압록강철교를 자세하게 보려면 단교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중국돈 30元(한국돈 6000원)을 지불하고 입장해야 단교위를 걸어볼 수 도 있고 멋진 철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꿈에 그리던 압록강변에 서다 _3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이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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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압록강변에 서다 _4
북한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돈을 버는 모습. 다리위에 총탄자국 표시돼 있다.
다리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마저도 표시를 해 놓고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중국사람들의 장사솜씨... 건너편 북한쪽은 다리 교각만 남아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없고 개발이 안됐다. 한국전쟁의 흔적을 이용, 돈을 버는 중국인들이 얄미우면서도 부러웠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전체가 발전하는 듯 보이는 중국 단동시내쪽 풍경과는 달리 허름한 옷차림의 사림들이 있는 북녘땅을 보면서 같은 민족으로서 마음이 안 좋았다. 
좀 크게 보이는 건물을 망원으로 당겨 담아보니 압록강각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작게 보인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역사의 현장 압록강 끊어진 다리를 걸어보면서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현장을 한번 가보고 지난 6.25 전쟁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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