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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다 빠지지 않는다면
엄마의 사랑이 더 그립다
2010-07-26 16:12:51최종 업데이트 : 2010-07-26 16:12:51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마당 끝 감나무 그늘 아래 강아지는 팔자 좋게 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이다.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배를 드러내 놓고 누워서 혀를 한껏 내밀고 헉헉 거리는 모양새가 '날 잡아 잡수셔' 하는 것 같다. 
큰비와 작은 비가 번갈아 뿌려지는데도 비가 그친 후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또 뜨거웠다.  중복을 며칠 앞두고 말복까지 잘 지낼 수 있을 런지 장담하지 못할 터인데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표정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다 빠지지 않는다면_1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다 빠지지 않는다면_1

이른 봄 길거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봉숭아 씨를 화단에 뿌렸더니 제법 키가 컸다. 다홍, 흰색,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잎이 실하여 여름 꽃을  충분히 대표해도 손색이 없다 생각하였다.  특히 여름 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운 여름에만 생각나는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땐 농번기여도 점심시간 후 얼마간의 시간은 아버지께서는 낮잠을 주무시거나 엄마는 집안에서 소소한 일을 하셨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들일하기에 무리가 있는 시간이었다. 이럴 때 마당가에 서 있는 봉숭아를 꽃잎과 잎사귀를 따서 백반을 넣고  절구에 넣고 곱게 찧어, 작은 손톱에 봉숭아를 올리고 비닐로 덮어 실로 칭칭 둘러 빠지지 않게 묶어 주었었다.  그리고 감나무 그늘 아래서 단잠에 빠지곤 했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먼저 비닐을 풀면 흐릿하게 봉숭아물이 들다 말았다. 손톱 색깔이 제대로 봉숭아물로 이쁘게 되려면 두 세 번은 반복했었던 것 같다. 

간밤에 화단에서 봉숭아 잎사귀를 손톱에 물들일 심산으로 따 왔다.  며칠 동안 비가 왔기 때문에 잎사귀를 조금 말려야 한다는 큰아이의 충고를 받아 들여 신문지 위에 널어 두었더니 얼추 수분이 날아가 꾸둑꾸둑해졌다. 

절구에 넣고 백반도 없이 찧었다.  혹시 아래층에서 시끄러워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예상보다 잘 다져졌다.  오른 손 다섯 손가락에 봉숭아를 올리고  묶었는데  왼손은 혼자 할 수 없었다.  매년 남편이 봉숭아 물들이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부재중인 관계로 큰아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마음 같이 섬세하게 잘 하지 못하여 요구사항을 자꾸 말했더니 "창업 이래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손님은 처음"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다 빠지지 않는다면_2
첫 눈이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다 빠지지 않는다면_2

커다란 손가락으로 작은 손톱 위에 봉숭아를 올리는 손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딸 없어 서운해 하던 마음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딸이라고 엄마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다  들여 주는 다정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열 손가락을 모두 봉숭아를 올리고 혹시 사이로 물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며 비닐장갑까지 끼워주는 배려에 '역시 너는 엄마 보다 한수 위구나' 생각했다. 

올해에는 어찌하다 보니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이맘때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엄마 무릎에 눕혀 놓고 간질간질 머리도 만져주고 잠자는 우리를 옆에 두고 감자도 깎고 마늘도 까곤 했었는데...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무슨 특별한 날이 되면 자꾸 도로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는 엄마의 말씀이 자주 찾아뵙지 못한 딸의 마음에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니들만 잘 살면 되지 우리는 아무 걱정 말아라" 매일 하시는 말씀을 봉숭아물이 곱게 들여진 손톱을 보면서 한없이 죄송스럽고 그리움에 사무치는 한 낮 되었다.

중복, 봉숭아, 여름휴가,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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