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6)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흔적을 보다.
2008-04-08 13:01:58최종 업데이트 : 2008-04-08 13:01:5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아침이 밝았다. 
다른 때보다 이른 6시쯤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한결 가뿐해진 몸이라 아침이 상쾌하다. 
언제고 이처럼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햇빛을 볼 수는 없다. 대신 틸리조 피크(Tilicho Peak, 7134미터)가 우뚝 서서 햇빛을 받아내면서 어둠이 걷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듯이 보스락보스락 소리를 내며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다. 

만년설의 빛깔에 나도 취해서 머뭇거리며 그 천상세계의 경이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 속에 일로 미루고 우선 그 틸리조 피크를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어져서 나는 어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아침 산책 삼아 묵디낫 쿰부를 향한다. 
이곳은 힌두 성지로 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쿰부는 쿰부 외곽으로 커다란 벽이 쌓아져 있다. 벽돌로 쌓여진 성곽 같다. 이 고도 3,800미터에 그것도 성스러운 신앙인들이 기원의식을 행하는 성소에 굳이 단단한 벽돌담을 쌓은 이유는 무얼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6)_1
아득히 먼 곳에 흰 봉우리가 보인다. 가까이 나무들 사이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계곡으로 흘러온 저 먼 히말아야의 눈물이 이들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인간이 하는 일들을 생각한다. 
결국 성소 앞에서도 무기력하게 인간은 인간의 흔적을 입히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만 못한 인간임이 분명하고 그러니 그 모자란 인간들이 성소를 찾아 다시 신께 경배하며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고자 하는 것이리라. 
분명한 사실은 신께서 벽돌담을 쌓으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리란 것이다. 인간의 의식으로 행해진 벽돌담은 자연과 다른 조화로움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것이 결코 자연일 수 없고 신의 뜻을 높이 받드는 의미가 되지는 못하리라. 

어쩌면 신께서 허락한 것은 세상 만물에 대해 자연 그대로 두고, 그대로 보고,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듣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일까? 
허망한 욕심이라는 말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은 빼고 그 허망이란 말을 되씹는 듯하다. 그러니 세상의 허망이 인간들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리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자신이 끝없이 함정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만 모르고 있는 진실인 듯하다. 결국 그 함정을 파는  노예가 되어 살다가 번뇌 속에서 아우성치는 꼴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6)_2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야 할 나무들은 더 이상 자랄 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의 땔감이 되고 나뭇잎들은 어린 짐승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어 자라면서 가지가 잘리는 것이 매년 반복된다.
나도 또 한 번 껍질을 만든다. 
틸리조 피크와 쿰부를 배경으로 그리고 묵디낫의 전경을 담아보려고 자세를 취한다. 
찬란하게 하늘로 솟구쳐오는 아침에 틸리조 피크를 사진에 담아보려 하지만 해 뜨는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 틸리조 피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엇비슷하게 서서 좀솜 방향의 다울라기리를 향해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어제 넘어온 토롱-라 파스 방향도 괜찮다. 
다와와 나는 번갈아가며 자세를 잡고 사진촬영을 하였다. 제법 찬 기운이 감도는 아침이다. 
어제 지친 걸음으로 걸었던 묵디낫 길이다. 묵디낫은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 고도가 3,800미터라고 하지만, 5,000미터가 넘는 찬란한 히말라야의 산줄기들이 포근하게 묵디낫을 감싸고 강물이 흐르듯 유유히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바라보는 눈길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바람도 잔잔하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6)_3
수많은 담들이 있다. 길따라 쌓인 돌담이 오랜 옛날의 낮은 성벽 같다.
묵디낫은 보기에 따라 몇 개의 군락진 마을로 구분되어 보이는데 네팔인의 설명에 의하면 각기 다른 지명을 갖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커다란 협곡을 사이로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들, 그리고 그 전후좌우로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을 넘어 조금만 경사진 곳을 오르면 사막이다.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막과 초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우리 상식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사막과 초원의 조화는 묵디낫이 새로운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개별성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결같이 긍정하며 바라보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조화에 대한 반응이다. 나는 이 찬란하게 빛나는 묵디낫의 아침에 영국인 친구 제이미가 극찬하던 묵디낫을 꼼꼼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흔적을 만들기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과시에 익숙하게 살아왔던 문명적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발전된 나라의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인 듯하다. 
그러니 네팔인들은 이 길을 성지 순례 길로 삼은 것이리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번 찾은 사람이라면 다시 찾는 것이리라. 마치 성지 순례하는 네팔인들 처럼..., 
새삼 제이미가 그토록 함께 둘러보길 원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고마운 친구란 생각이 든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6)_4
사막 산이다. 그 아래는 숱한 이주의 흔적들이 있었다. 계곡이 깊은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터의 흔적이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 보이는 묵디낫을 생각한다. 
곧 식당으로 올라가 주문한 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에 바라보던 묵디낫보다 규모가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묶었던 호텔을 지나서도 많은 마을들이 줄지어 있었다. 계곡과 계곡 사이에 묻혀있듯 숨어있던 마을들이 있었다. 

길을 가며 묵디낫이 다른 지역과 다른 점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길가에 즐비한 노점들이다. 해발 3800미터나 되는 이곳에 노점이 즐비하다는 것은 직접 본 사람 아니면 믿기 어려울 법한 일이다. 
주로 머플러나 모자 등을 팔고 있었다. 기념품이나 선물용으로 괜찮을까 싶어 가격을 알아보려는데 다와 쉐르파가 말린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이다. 
시중가격보다 대여섯 배는 더 비쌀 것이라고 귀뜸 해주었다. 

낮은 경사 길을 찬찬히 걸었다. 
묵디낫도 오래된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경찰 검문소가 위치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랜 예전에는 호화로운 마을사람들의 세상이 있었을 법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군데군데 그 흔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래된 마을 궁전이 그것이다. 
지금은 벽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을 중심에 커다란 사원이 있었다. 고대부터 네팔 전역은 어쩌면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낙원이었던 모양이다.

추천 0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