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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가지와 모수추점비(母瘦雛漸肥)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2008-05-22 17:14:16최종 업데이트 : 2008-05-22 17:14:1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재철

씰바가지, 모수추점비가 보인다.
쌀바가지와 모수추점비(母瘦雛漸肥)_1
지금은 밥 지을 쌀을 보관하기 위하여 황토쌀통이다 게르마늄쌀통이다 하여 여러 가지 기능성 쌀통을 많이 이용하지만 전에는 쌀뒤주 또는 쌀독을 주로 이용하였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쌀 한 가마 정도 들어가는 조그만 쌀뒤주를 이용하다가 언젠가 쌀독으로 바뀌었다. 
이후 쌀뒤주는 한갓 장식용으로 쓰였다. 쌀뒤주는 전면의 나무결 모양이 멋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 집 것은 나무결이 흡사 단봉낙타(單峯駱駝)가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집이 낙산(駱山) 밑이어서 그런 쌀뒤주를 얻었으리라. 

쌀독에서 쌀을 퍼 낼 때는 그릇이 필요하다. 
한동안은 미제 군용 국자 또는 한 됫박 정도 용량의 여러 가지 그릇 등을 사용하다가 언제부터인지 아예 바가지로 고정되었다. 
어머니는 5남매가 장성할 때까지 일생 대부분을 하루에 세 번씩 꼬박 쌀독의 쌀을 퍼내 끼니를 준비하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쌀바가지를 이용하셨는데 하도 오래 사용하다보니 한쪽이 금이 가고 안쪽은 쌀겨 기름이 배여 반질반질 하였다. 
금이 간 부분은 손수 철사로 꿰매었다. 바가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후 가보로 지정, 고이 찬장에 모셔 두고 있다. 

생활에 힘들 때 어머니는 가끔 5남매 중 제일 맏인 누나와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미거미가 힘들여 새끼를 낳으면, 낳아준 은덕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어미를 잡아먹고 하는 소리가 있단다. 우리 엄마가 신선되어 날아간다"
'부모에게 잘해라'라는 소린데 어릴 적에 어디 귀 담아 들리나. 거미새끼가 정말 어미거미를 잡아먹을까? 하는 의문만 생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장성한 후에 정말로 어미거미는 새끼거미에게 먹이로 희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모성애였다. 
자식끼니를 준비하는 쌀바가지와 거미교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실감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헌신적인 어미 제비의 새끼 제비 돌보기 이야기인 중국 명나라 유수(劉叟)의 연시(燕詩)를 접하게 되었다. 
"부리와 발톱은 쇠하여도 마음과 몸은 피곤한지도 모르네... 어미는 수척해지고 새끼는 점차 살이 찌네... 날개를 들어 돌아보지 않고, 바람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리네..."
새끼의 떠남에 대한 섭섭함을 적은 시였다. 

모수추점비(母瘦雛漸肥), 어미는 수척해지고 새끼는 점차 살이 찌네. 새끼의 먹이를 위하여 몸을 내던진 어미거미. 바로 어머니의 어릴 적 교훈인 연시(燕詩)였다. 

불현듯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십여 년을 사용해 온, 쌀겨 기름에 찌들고 철사로 꿰맨 쌀바가지를 꺼내본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보금자리 속에서 하루 세 번 5남매의 끼니를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그 쌀바가지에 내가 직접 붓을 댄 모수추점비(母瘦雛漸肥)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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